드디어 폴 매카트니가 다녀갔습니다. 지난 2일 잠실벌의 주인공은 LG트윈스도, 두산베어스도 아닌 폴 매카트니였습니다. (공연 리뷰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031243171&code=960802) 장장 160여분에 걸친 공연, 그것도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내한공연의 감동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짤막한 기사로 요약하며 쓰다보니 죄스런(?)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서 없는 글이라도 정리해 남겨두면 이 감동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더 생생하게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몇 가지 포인트로 추려서 남겨봅니다. 혹시 폴 매카트니 공연 다녀오셨나요? 그럼 일단 두말 할 것 없이 명곡 'Hey, Jude'에서 터져나온 감동적인 '떼창' 한번 더 함께 감상하시죠^^

1. 우리는 열혈 한국팬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폴 매카트니지만, 공연은 폴 매카트니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극성스러운(?) 한국팬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그에게 선사했습니다.

일단 카드섹션(?).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나올 때 운동장에 마련된 이동식 의자에 앉아있던 팬들이 일제히 머리 위로 종이 한 장을 펼쳐들었습니다. 거기엔 붉은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죠. 이때만 해도 하트가 그려진 종이 반대쪽엔 영어로 'NA'가 적혀있길래 전 솔직히 뭔가? 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Hey Jude'가 나올 때를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곡 후렴구가 계속 "NA, NA, NA, NANANANA~"거리잖아요.

이 퍼포먼스를 본 폴 매카트니는 진짜 감동한 듯 했습니다. 고개를 연신 절레절레, 두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듯 몇번이나 움켜지더니 스피커 위에 팔을 올려 손으로 턱을 괴고 한국팬들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이를 보는 한국팬들도 역시 감동... 감동이 감동을 부르는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또 'Let It Be'가 나올 때 경기장을 가득 수놓은 스마트폰 플래시 라이트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몇해 전부터 관객들이 이 퍼포먼스를 즐겨 쓰고 있는데,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 잘 감상할 수 있네요.

하나 더! 폴 매카트니가 'Hey, Jude'를 부르고 잠시 무대 뒤로 사라진 사이, 팬들은 후렴구 "NA, NA, NA, NANANANA~"를 무반주로 열창했습니다. 이윽고 등장한 폴 매카트니와 그의 밴드가 관객들의 소리에 맞춰 반주를 자연스럽게 깔아주는 광경이 연출됐습니다.

2. 한국말 연습 좀 하셨쎄요?

폴 매카트니는 원래 월드 투어를 하면서 그 나라 말로 팬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내한공연도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첫 인사는 "안뇽하쎄요! 서울!"이었습니다. 보통의 내한 스타도 이 정도는 하니 별로 감동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폴 할아버지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한국와서 좋아요! (잠시 머뭇머뭇) 드... 디... 어!"

아마 무대 바닥에 있는 모니터에 자막이 나오나 봅니다. 한국말을 할 때마다 모니터를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대박"이라는 말도 배워온 모양입니다. 또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마워요"라는 말도 하더군요. 같은 말이지만 다른 표현을 알고 있다는 게 남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귀엽게도(?) 몇 마디 하시더니 "내 한국말이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소통은 영어로 이뤄졌죠. 그래도 폴 할아버지는 좀 다릅니다. "번역된 내 말이 옆에 있는 스크린에 잘 나오고 있냐"며 확인도 하시더군요.

이날 공연에서 한 가지 '에러'가 있었다면, 폴 매카트니의 말을 번역해 스크린에 띄워주는 시도(?)였을 겁니다. 마치 과거 PC통신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파란 바탕화면에 흰색 글씨로 폴 매카트니가 방금 하는 말이 한글로 번역됐는데요, 문제는 속도가 정말 PC통신 모뎀처럼 느렸다는 점!^^; 가끔 오타도 띄워주셔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 주셨습니다.

3. 역시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이날 공연에선 젊고 어린 관객들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50~6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이든 관객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비틀스 노래를 들을 수 있단 점 때문이겠죠! 어느 투어에서든 폴 매카트니는 대개 셋리스트의 3분의2 정도는 비틀스 곡들로 채웁니다. 한국 공연 셋리스트 (<-여기에선 폴 매카트니 월드 투어의 셋리스트를 거의 전부 볼 수 있네요)

비틀스 노래 중 특히 전세대를 아울러 가장 어필하는 곡 중은 'Yesterday'가 아닐까 합니다. 투어에서 이 곡은 대체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가 있죠. 이날도 공연이 막바지에 이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자 여기저기 관객들 사이에선 "'Yesterday'는 왜 안 부르는 거냐"는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Yesterday' 영상입니다! 정말, 잔잔한 떼창이 감동이네요 ㅠ_ㅠ

4. 폴 매카트니는 아직 '팔팔'했습니다.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지난해 그는 예정돼 있던 내한공연을 취소한 바 있습니다. 일본 투어 직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한국팬들 사이에선 "폴 매카트니가 결국 내한공연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예측도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모두가 확인했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여전히 2시간이 넘는 공연을 거뜬하게 해낸다는 것!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진다느니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날 공연에선 크게 거슬릴 정도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2시간40분 내내 딱히 쉬는 시간도 없이 공연만 했는데도 말이죠.

여기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대체 왜 그는 공연하는 내내 물을 마시지 않을까요? 평소 채식을 해서 몸 안에 수분이 풍부한 걸까요......? 어쨌든 폴 매카트니는 아주아주 '팔팔'해 보였습니다.

공연을 마친 폴 매카트니는 다음날인 3일, 트위터에 공연 소감을 밝혔습니다. "Fantastic climax to the Asian leg. Korean fans gave us the best welcome ever. We love them!" 번역하면 "아시아 투어의 환상적인 클라이막스. 한국팬들은 우리를 그 어디보다 더 반겨줬습니다. 사랑합니다." 대략 이 정도 되겠네요.

이렇게 폴 매카트니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지나갔습니다. 그를 볼 다음 기회란 게 과연 있을지! 그래도 이날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낀 팬들이라면 분명히 기다릴 것 같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분명히 "또 다시 만나자"라고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현대카드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 굵직굵직한 아티스트들을 이렇게 매년 불러주시니, 높은 연회비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대카드 하나 만들어 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냥 문득 든 생각입니다...... 현대카드 홍보 목적 전혀 X)

뒤늦게 알았지만, 폴 매카트니 공연에 초청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연 시작 전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박원순 시장이 폴 매카트니에게 세월호 참사 추모 엽서를 내밀며 한 마디 부탁하자, 폴 매카트니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with love from me, be strong."

 

*인터뷰는 KBS2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종영 이후 지난 3월4일 압구정동 인근에서 진행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김현주씨가 한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091950271&code=960801)

*사용된 모든 사진은 김현주씨 소속사인 '에스박스미디어'에서 제공했습니다.

-<가족끼리 왜 이래> 끝나고 어떻게 지내셨어요?

 =끝나구 바로 또 연휴 있었고, 연휴 명절 보내고... 또 제주도 가고 이래가지고 이제 쉬어야 돼요. 어제가 처음으로 딱 혼자 쉬는 날이었던 것 같아.

-실제 가족관계가 궁금하더라구요.

 =똑같이 장녀예요. 남동생들 있고. 그래서 아무래도 남동생들이 하는 씬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여동생 있는 거랑 남동생 있는 거랑 또 다르잖아요. 그래서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막내하고 아무래도 더 친한 것 같아요. 둘째는 아무래도 장녀니까 묘하게 의지하고 기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눈치도 보게 되는 것 같고... 그리고 남동생한테 기대게 되는 게 있는데, 묘하게 의견 같은 것도 물어보게 되고. 결정권을 넘기게 된다든가...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드라마에서도 묘하게 그런 씬들이 있었어요. 막 대장처럼 굴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너 어떻게 생각하니?’ 이런 것들도 있었구요.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작가님한테 ‘남동생 있으세요?’라고 했더니 ‘없어요. 막내인데...’ 그런데 작가님이 그런 디테일한 것까지... 신기했어요. 막내는 만만하잖아. 때리기도 쉽고. 내 소유 같아, 얘는 막. (웃음)

-지금은 ‘차강심’ 역에서 빠져나오신 상황이신가요?

 =아직은 여운을 가져가려고 하고 있어요. 원래는 딱 차가웠는데, 끝나면 ‘오케이, 굿바이’ 딱 이러고 다른 거 하고 그랬는데. 그리고 긴 거 하면 지겨워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지루해져요 막. 사극 같은 거 끝나면 빨리 염색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많이 따뜻해요. 분위기를 좀 가져가고 싶어. 느끼고 싶어. 방송 없는 첫 주가 너무 허전하더라구요. 방송이 딱 끝나고 다음주 있잖아요.

-연속으로 호흡이 긴 작품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런 건 없구 요즘 미니시리즈는 점점 이제 젊은 친구들 위주로 가다보니까... 계속 미니시리즈는 했었어요. 요번 거하고 요전 거에서만 이어서 하게 된 것 같고.

-이번에 가족극을 한 건 다소 의외였는데, 그런 맥락에서 가족극을 하고 계신 건가요?

 =음, 그렇기도 하구요. 워낙에 제가 미니시리즈도 남녀 사랑의 막 그런 느낌이 아니라 좀 따뜻한 가족 느낌 위주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이번엔 사실 김상경씨와 러브라인도 굉장히 화제였는데.

 =음, 그냥 궁합만 잘 맞은 것 아닌가? 멜로... (멜로보단 코믹에 가까웠나요?) 네...... 그렇지 않았나요? ...... 아쉽네요. (웃음)

-서로 연기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맞춰주신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걸 아실까. (웃음) 근데 서로 상부상조한 것 같아요. 제가 못 하는 부분에서는 오빠가 더 해서 코믹하고 재밌게 살려준 부분도 있고. 여자니까 아무래도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가 있는데.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첨엔 당황스러웠던 적도 없진 않았어요. 첨엔 되게 멀쩡한... (웃음) 첨부터 그랫던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많아졌어요. 코믹한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저희가 그렇게 바뀌는 순간에 첨엔 살짝 당황해서 ‘오빠, 멋있게 해주세요. 제가 사랑할 사람이에요’라고도 얘기했었어요. 그런데 그래서 저도 당황했던 적도 있고 그랬는데, 그걸 재밌어해주시니까. 그렇게 잘 흘러간 거죠. 결과적으로는 뭐 좋았으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극 중에 두 남자(문태주, 변우탁)가 나오는데, 원래 이상형은 어느 쪽이 가까워요?

 =저 아까 그 질문에 화를 냈는데. (웃음) ‘뭐라구요? 두 사람 중에? 어떻게?’ (웃음) 그래서 내가 ‘실제로 얘기하는 거냐? 아니면 100프로 극중에서?’ (웃음) 글쎄요.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면 문 상무를 택했을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어둡지 않고 나는 밝은 사람이 좋고. 내가 좀 어두운 성향도 있어서 그렇게 밝게 끌어주는 사람이 좋아요.

-김상경씨가 ‘소개팅 공약’도 하셨었는데요. 김현주씨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셨었는데.

 =제가 소개팅이란 걸 해본 적도 없지만, 너무 싫어요 그게. 억지스럽고, 앉아가지고 뭐할 거예요. 그리고 이미 상대방은 나에 대해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고 나왔다고 생각할텐데... 음, 그런 것도 너무 싫고, 자연스럽게 만나서 알아가다가 사랑에 빠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소개팅했는데 그럼 어떡해. 만나자마자 ‘예스, 노’ 할 거야, 어떻게 해야돼요?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더 만나볼까’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과 같지 않고. 그리고 또 미안하지만 남자들은 착각을 그렇게 잘한다? (웃음) 두번째 만나면 분명히 깊게 생각할 거라구요. 그런 것도 있고, 그렇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었고, 그리고 (김상경씨가) 물어봐놓고 자기가 중간에 커트시켜 놓고 그래요. 장남이라나 누나들이 많다나... 그래서 ‘아, 그럴거면 냅두라’고. (웃음) 하지 말라고. 그냥 좋은 사람들 있으면 전화하라고... 그럼 그냥 내가 밥을 먹으러 가든, 술자리든, 그럼 편하잖아요. 그렇게 만나다가 싫다가도 좋아질 수 있는 거고 그런 거니까... 그렇게 정리를 했어요.

-스캔들이 없는 것 같아요.

 =아유, 부단히 애를 씁니다. (웃음) 아니면, 진짜 별로 없던가. (웃음) 상황적으로 그렇게 깊이 연애를 할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극 중에서 결혼과 연애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는 계기가 나오는데, 실제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자꾸 바뀌어요. 어떨 때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 너무 외로워서 여기 지금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하고 싶다. 예를 들어서 어디 여행을 가야되면, 여행 스케줄을 짜기가 힘든 거야. 친구들은 다 시간이 안 맞아. 그럼 이럴 때, 우리 둘이 시간 딱 맞춰서 떠나고 그러면 너무 좋겠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라도 그냥 얘기하다가 막 떠나고 그러면 너무 좋겠는거야.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또 갑자기 누가 있다고, 매일,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한 거예요. (웃음) 그렇지 않아요? (웃음) 자꾸 바뀌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바라요. 누군가 나타났을 때만이 확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가 끊임없이 구해준다든가, 무한애정을 품어준다든가, 한결같이. 그런다면 아마 마음이 바뀔 것 같아요.

-그런 분 되게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 그러니까 내가 여자로서 별로 매력이 없는 것 같아. 갑자기 막 이렇게 내 비하하고. (웃음) 좀 질리는 스타일인 것 같애. (웃음) 셀프디스. (웃음) 같이 가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이 나를 더 좋아하거나, 내가 더 좋아하거나, 이렇게 기울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더 좋아할 땐 진짜 올인해. ...... 그러니까 연애 스킬이 부족해. (웃음) 밀당 못해요. 왜 밀당이 필요한지를 모르겠고.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연애를 하면, 일이나 사랑 중에 한쪽에 기울어지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나는 되게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꽤 이성적이기도 한 거 같아요. 그래서 무너지지 않아요. 선을 되게 지키려고 해요. 그래서 상대한테 차갑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러니까 내 기준에는 내가 몰입하고 다 주고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상대한테는 부족한 게 있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두려움 없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뜨거운 사랑 한번 해보고 싶어요. 막 공개연애를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너무 부러워요. 그런 용기가. 몇년 만나고 또 헤어질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엔 그 사람만 보이고 그러니까 공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그러는 거잖아요. 저는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옛날에는, 요즘에나 그런 게 많았지, 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그런 게 없었어요. 공개연애라는 말 자체가 없었어요. 무조건 숨겨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몸에 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가족극 했었으니까 이제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그게 편할 것 같네요. (웃음)

-극 중에서 그렇듯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느낀 게 있다면요?

 =느끼는 게 다 똑같을 거 같아요. 우리 감독님도 그렇고, 하면서 많이 부끄럽고 그랬다고 해요. 왜냐면 우리가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서 크게 반향을 얻고 새롭게 하는 그런 건 없더라도 그래도 느끼는 바가 있으면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정작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까. 하면서도 부끄러웠던 적이 굉장히 많았어요.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부모님과 같이 보기가 힘들고 민망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진하게... 후회가 많이 됐었어요. ...... 그랬어요. 다정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대화가 많이 좀 이뤄졌으면 그럼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일단 대화부터가 ‘왜요, 왜요’ 막 이렇게 나오게 되니까... (웃음) 도대체 그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제 엄마가 계시니까 ‘엄마한테라도 잘해야지’ 생각하지만 또 나중엔 ‘아유, 그만 물어봐. 내가 얘기했잖아’ 자꾸 이렇게 되니까... (웃음) 그랬어요. 나중에 또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나중에 엄마가 되서 늘 그런 걸 후회를 하며 살 것 같아요. 쉽게 고쳐지지 않은 게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노력해야죠.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노력해야겠다란 생각을 그래도 했다는 게 그래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극 중 유동근씨가 진짜 아버지처럼 느껴졌겠어요.

 =그랬어요. 지금도 선생님보다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편해요. 문자로 ‘아버지~’. 우리는, 특히나, 형식이(차달봉 역의 배우 박형식) 때문에 그런가? 형식이가 약간 사랑전도사? (웃음) 그런 아이예요. 정이 많고, 사랑이 넘쳐요, 걔는. 스킨십이 정말... 강준이(윤은호 역의 배우 서강준)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형식이 보면 부러울 때가 있었다고. 아무래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애한테 반응을 하게 되니까, 그런데 강준이도 그렇게 못하는 성격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도 저렇게 하고 싶다... 형식이는 태생이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남자고 여자고 안 가리거든요. 인사도 그냥 안해요, 걔는. 만지면서 해야 돼. (웃음) 우리는 좋지. (웃음) 남자들은 자꾸 피하고 이러고. 걔 때문에 그랬나? 사랑이 넘치고, ‘사랑해요’ 이런 말도 거리낌없이 해요. 단톡방 있어가지고, 마지막에 ‘사랑합니다’ ‘저두요’ ‘저두요’ ‘제가 더 많이 사랑해요’ 난리가 났어요. (웃음) 밖에서는 그렇게 잘 되면서 안에서는 왜 그렇게 안 될까? ‘사...... 사...... 알지?’ (웃음)

-20대 남자들 중에서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아유, 많죠. 다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의외로 괜찮을 것 같더라구요. 제주도 가서 사진 찍고 이런 거 보니까 아직 내가 괜찮다고. (웃음) 가능할 것 같다고. (웃음) 다들 그래서 작가님도 ‘아직 너 될 것 같아’ 그래서 그럼 ‘써요~!’ (웃음) ‘쓰세요’. (웃음) 그래서 다음에 좀 밝은 거, 어린 친구들이랑 밝은 거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누나 같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아.

-포털사이트에 나이가 안 나오더라구요.

 =지웠지. (웃음) 그게 시간을 돌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계속 28살 같아요. 그냥 그 생각으로 살아요. 내가 나이가 그렇게 먹었다는 걸... 아유, 너무 무서워. (웃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건강도 많이 신경 쓰고, 운동도 몸매를 다지려고 하드하게 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시작을 했어요. 진짜로 해야될 것 같아서. 그전까지는 건강을 유지하는 운동을 했어요. 많이 걷고... 산책하는 걸 되게 좋아해. 좋은 거 예쁜 거 많이 보구. 기본적인 스킨 케어같은 것 하고... 철이 안 들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 (웃음) 내가 어른인 척 하고 딱 이러는 순간 늙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분위기의 촬영 현장이었다고 들었어요.

 =대본이 2주 전에 이미 나왔고... 제가 무슨 일일드라마냐고 그랬어요. 대본을 여섯개 들고 나간 적도 있어요. 보통 한두개라든지, 쪽대본으로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대본이 미리 나와있으니까 초반에. 무거워서 들고 다니지도 못해요. ‘웬일이야?’ 할 정도로 대본이 2주 전에 이미 다 나와있었고... 그러니까 사실은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고, 거기서 못한다라는 건 사실 핑계거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대본이 다 나오니까 스케쥴도 무리하게 안 잡힐 수가 있었고. 감독님도 또 워낙 빨리 찍으시고. 다 가족들이 워낙 우르르 몰려다니니까 그런 건 진짜 오래 걸리는데. 결혼씬 같은 거는 진짜 배우들이 싫어하는 씬들 중 하나예요. 방송은 3분 안팎인데 촬영은 종일하니까. 인물이 많으니까. 감독님이 몇시간 만에 딱딱 찍어내시고. 피곤할 일이 없었어요. 정말 좋았지.

-드라마 촬영 전에 준비를 좀 철저하게 하시는 편인가요?

 =이번엔 여유가 좀 있었나? 일찍 캐스팅 된다면 좀 일찍 준비할 수 있는데, 급하게 캐스팅 됐다 그러면 아무래도 그런 게 좀 적죠.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은 준비를 많이 할 건 없었어. 대본 보자마자 딱 섰고, 그냥 두 가지를 완전히 다르게 한다고 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연기는 사실은 사극은 대사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거나, 역사적인 시대가 맞는 감정을 찾아야 되기도 하지만 사극 뒤에 하니까 대사가 너무 쉬운 거예요. 그냥 막 일상적인 대사잖아. 너무 외우기도 쉽고. (웃음) 가내씬이 대충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공을 진짜 많이 들인 거예요. 핀이나 옷도 여러번 고르고... 츄리닝 바지 같은 경우엔 입고 무릎 꿇고 있고 그랬어요. 무릎 튀어나오게 하려고. (웃음) (실제 집에서는 어때요?) 집에서는 대부분 레깅스에 긴 티셔츠 입고 있어요. 그리고 수면양말 신고 있는 거 많이 나오잖아요. 집에서도 수면 양말 신고 있어요. 맞다, (드라마에 나온) 그거 내 거다! (웃음)

-드라마가 시청률에서도 성공적이었는데요.

 =이전 드라마가 기대보단 조금 그랬어서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 리딩 할 때부터 이미 분위기가 좀 남다르기 했었어요. 성공의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고 해야 하나? (웃음) 방의 기운이... 다 첨 보는 사람들도 많고... 저도 같이 했던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유동근 선생님도 처음이고... 감독님도 처음이고 다 어색하잖아요 두루두루. 배우들끼리는 튕기기도 하고 눈치도 보고 어색하고 그런데, 묘하게 너무 편하고, 저도 대본 리딩은 많이 해봤지만 첫 리딩은 너무 싫어요. 내가 뭔가 테스트 받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떨리는데, 이번엔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분위기가. 끝나고도 뒤풀이 자리에서도 너무 재밌을 것 같고 너무 좋고 그랬어요. 처음 시작할 때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설문조사 중에 설 음식을 잘 만들 것 같은 연예인으로 뽑혔어요.

 =그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거 그냥... 드라마 인기가 반영된 것 같아. (웃음) 그런데 음식은 못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먹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폭식증까지는 아니지만 스트레스 받거나 이러면 먹는 걸로 풀고, 먹지 않으면 허해서 미칠 것 같구. (웃음) 그러니까 요리하는 것도 즐겨하고 그런 것 같아요. (잘 하는 요리가 있어요?) 김치볶음밥. 김치 볶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김치를... 일단 김치가 맛있어야 되는데, 덜 쉬었으면 매실청을 좀 넣고... 소스는 항상 간장과 설탕을 조합해서 좀 조리는 듯이 볶는 거야. 뭘 많이 넣으면 안돼. 참치 정도는... 그래. (웃음) 제가 매운 걸 좋아해서 청양고추 많이 넣어요. 파스타에도 넣어요. 닭발 이런 거 좋아하고. 이태원에 닭발집 되게 맛있는 데 있는데. (웃음) 아, 닭발 언제 먹지? (웃음)

-드라마 찍으면서 회식도 자주 했어요?

 =우리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고정적으로 하루는 쉬었어요. 화요일에 일찍 끝난다고 하면 회식. (웃음)스케쥴을 비우면서 회식을 했어요. 배우들끼리 단합대회 하자고 했었는데, 저는 그렇게 다 모일 줄 몰랐는데... 그리고 촬영 때문에 저는 늦게 가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촬영을 뺴줬잖아. (웃음) 나는 그런 팀은 첨 봤어. (웃음) 그리고 뭐 하면 또 회식이야. (웃음) 그리고 우리는 체육대회를 두 번 했었어요.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도 했어요. 와인바를 빌려가지고 정말 광란의 밤을... (웃음) 와, 나 춤을 그렇게 많이 추기는 처음이야 (웃음) 미쳤어요. (웃음) 담비(권효진 역의 가수·배우 손담비)는 맨날 행사 뛰잖아. 지겹지도 않나? (웃음) 촬영 끝나는 마지막 날에도 엠티 갔어요. 1박2일로. 거기서 또 게임을 한 거예요. 저랑 담비랑 강준이랑 지연이랑 이래서 가가지고, 배우들 팀 나눠가지고 윷놀이에... 림보하고. (웃음) 또 상금이 걸려있죠. 시청률 잘 나와서 받은 격려금 모아놨다가 상금으로 주고. (웃음) 막 몸을 던지고 그랬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야, 우리 또 회식해?’ (웃음) 배우들 또 한번씩 사고...

-원래 현장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가는 편이세요?

 =저는 그거 좀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제 자존심이 걸려 있어요. 제가 일하는 현장이 우울하거나 이런 거를 용납을 못해요. 그리고 막 분위기가 감독님 땜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더라고 스탭들 하고는 잘 지낸다든가... 그런 걸 못 견뎌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노력할 것 없이 감독님도 그렇고... 촬영 감독님이 레크레이션 강사처럼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지칠 때마다 그렇게 한번씩 으쌰으쌰 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끝날 때 너무 아쉬웠어요. 지금도 너무 아쉽고...

-주사 있는 사람 있었어요?

 =주사 있는 사람 없었어요. ...... 있다면 제가. (웃음) 숨겨놓은 흥이 있어가지고. (웃음) 평상시엔 안 그런 척 있다가 술을 먹으면 나오는 스타일이어가지고. (웃음) 막 비트에 몸을... 막 가만두질 못해요. 즐거워 하는 스타일이야.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웃음)

-팬클럽 20년 동안 유지되고 있잖아요.

 =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랜 세월 좋아할 수는 없어. 좋아하는 가수도 있고 배우도 있지만, 그때그때 또 달라지고... 연애도 그렇잖아요. 물건도 한 가지를 끊임없이 좋아해주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그게 나라는 것도 신기하고... 진짜 오래됐거든요. 어떤 기자님이 자꾸 20년 됐다고 강조하길래 제가 ‘아니다, 18년이다’라고 했는데. (웃음) 오래 됐어요. 팬들이 오래 됐고. 초창기 팬들도 있어요. 사회인이 돼서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각자 분야가 있으니까 서로 부탁하기도 하고... 팬이 인생을 함께 한 느낌이에요. 제가 아이돌 같은 배우도 아니고, 제가 손담비처럼 가수 활동을 한 배우도 아닌데 팬덤을 유지하는 게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거든요. 시상식장에 늘 제가 참석을 할 때마다 수상을 하든 안하든 플랜카드를 제작해가지고 추운데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구 늦게 끝나면 찜질방에서 끼리끼리 자구... 난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지금도 참 놀라운 일인 것 같아요.

-비결이 뭘까요?

 =제가 또 잘 끌어왔다... (웃음) 저는 SNS를 전혀 하지 않아요. 예전에 만든 적은 있는데, 체질상 못하겠어서 그만 뒀어요. 제가 첨엔 카톡 같은 건 줄 알고 잡담을 하니까 누가 ‘다방가서 얘기하라’고. (웃음) 이렇게 하는 게 아니야? 뭐가 뭔지 모르겠는 거야. (웃음) 저는 셀카 찍는 취미도 없고, 미니홈피도 안했었어요. 오로지 팬들이 나랑 이야기하는 데는 팬카페예요. 제가 인터넷 기사들도 사실은 다 찾아보지 못하는 게, 또 안 좋은 기사들도 있을 수 있고 안 예쁜 사진이 있을 수 있고, 댓글이 기분 나쁠 수도 있잖아요. 팬들이 퍼오는 좋게 나온 기사들, 예쁘게 나온 거 위주로 봐요. (웃음) 팬들은 막 저도 못 본 제 사진을 구해와서 영상 만들고, 뽀샵하고... 드라마 캡쳐 쫙 하고 예쁘게 나온 영상들 짦게 짧게 올려놓고 팬들끼리 막 예쁘다하는 그렇게 하는 걸 봐요. 그래서 저도 카페를 매일 들어가다시피 하고, 댓글 많이 남기려고 하고 그래요.

-슬럼프가 있었어요?

 =있었어요. <인순이는 예쁘다> 하기 전에... 슬럼프를 넘어보겠다고 했던 드라마였고... 그 전에는 하기 싫었어요. 내 연기도 싫고. 내 얼굴도 싫고. 막... 마음에서 병이 오니까 얼굴이 안 예쁘고 이상해. 그러니까 카메라 앞에 설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꽃꽂이 같은 것도 하고... 그게 심리치료가 좋다고 해서 우연히 시작했는데, 진짜 좋더라구요. 그리고 그림도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아, 다시는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인순이는 예쁘다>란 작품이 들어왔는데, 그게 제가 사회부적응자예요. 전과를 가지고 있고. ‘인순이는 예쁘다’가 본인한테 스스로 얘기하는 건데, 사실 그게 내가 하는 말이기도 한데, 그게 늘 인순이가 자기한테 최면을 걸듯이 하는 말들이었거든요. 자살을 하려고 하기도 하고 막 그래. 그래서 ‘아, 얘가 좀 너무 나갔다. 이 인물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생각했고... 그리고 살다보면 좋아지는 거니까... ‘아, 나도 좋아질 수 있겠다...’ 그런 기대로 드라마를 하고 결과적으로 좋았어요. 시청률이 좋진 않았는데, 팬층이 되게 두터웠었고, 작품도 좋았고 그랬어요.

-슬럼프는 왜 왔던 걸까요?

 =음... 시간이 없었어요. 내가 배우인지 예능인인지 디제이인지 모르고... 지금은 해냈으니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그때는 싫었어요. 그리고 욕도 진짜 많이 먹었어요. 스케쥴이 맨날 꼬이고 이러니까 사람들은 맨날 나만 기다리고 있고 그러니까. 이런 게 어릴 땐 정신적으로 힘들고, 이런 거에 기죽고 울거나 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애를 쓰는 몸부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많았고... 매니저랑도 맨날 싸우고,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울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나한테 딱 주어지니까, 그러니까 막상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내 자신이 없어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 생각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때가 20대 후반쯤이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사랑도 없고, 일도 생각해보니까 그닥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거예요. 제가 예쁘고 트렌디한 배우로 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너무 많은 걸 하다보니까 이제 나도 지루해 막. TV에 나오는 게... 보여줄 것도 없는 것 같고... 근데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었다고 하면... 나는 ‘그래도 사랑을 얻었으니까 일은 잠시 뒷전으로 한다’라고 생각했을텐데. 그 당시엔 그러지도 않았었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스스로 ‘예쁘고 트렌디한 배우가 아니었다’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어때요?

 =지금 제가 어떤 배우예요? 나 그걸 물어보고 싶었어. 솔직히 나 잘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지를... 물론 제 자리는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잘 하는 연기 스타일이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그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사람들이 나한테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몰랐었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게 연기에 충분히 녹아나고, 편안하게 보일 것 같아요. 연기파, 개성파, 또 뭐... 예를 들면 이제는 뭐가 있을까요? 배우가 어떤 식으로 나눠지나요? 그냥 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그런 배우... 그런 연기를 하는 사람 되고 싶어요.

-그래서 가족드라마를 선호하시는 건가요?

 =그런 걸 수도 있고... 가족적인 것도 좋아하고, 좀 편안한 거.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거. 흔히 말하는 막장, 그런 거를 좀 피하게 되는...

-악역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사극에서 했었어요. 되게 재밌더라구요. 아유, 재밌구 맛이 있어요. (웃음) ‘아, 요렇게 못되게 할까. 이렇게 못되게 할까’ 생각하는 맛이 있고... 제가 착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 아니고, 의외로 제가 일탈도 꿈꾸고, 그런 걸 되게 좋아해요. 알콜중독자 이런 거 하고 싶다고 누누히 얘기했었 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매치가 잘 안되나봐요. 의외로 저한테 그런 게 있어요. 아~ 그걸 좀 보여주고 싶은데. (웃음)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향이 단정하려고 하는 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배우로서 좀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뭔가, 자유로워야 되는데 표현하는데 있어서... 근데 좀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앞으로는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볼까봐. (웃음) 위험할까요? 제가 확 가는 스타일이어가지고, (웃음) 그래서 쉽사리 못 놓나봐. 놓으면 확 놓는 스타일이라서. (웃음) 이태원에서 맨날 나를 목격한다는... (웃음)

-요즘 어린 팬들도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요.

 =많이 생겼어요. 편지 써서 편지함에 막 꽂아놓고 가고 그래요. 그럼 난 그러지. ‘아유, 추워’ ‘얘, 빨리 집에 가‘ (웃음) 그럼 애들은 그걸 또 욕 안하고 터프함 속에 정이 있다나? (웃음) (팬들의 해석이 맞는 거죠?) 맞...다고 봐야죠? (웃음) ...... 맞아, 맞아. 난 진짜 정이 많아. (웃음)

-차기작은요?

 =올해 안에 하나더 하고 싶긴 한데요, 내가 생각한대로 되지 않아서... 조급해지면 아무래도 선택이 아무래도... 올해 가을에 했으면 좋겠는데, 만약에 안 되더라도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요. 시간을 잘 보내고 잘 쉬면 작품도 잘 되더라구요.

-쉬는 동안엔 누구를 많이 만나세요?

 =엄...마...? (웃음) 저 <예스터데이>란 프로그램 했었는데 거기 스태프들이랑 많이 친해져가지구... 음악 좋아해서 같이 얘기하고... 악기 얘기도 좋아하고... 저 이번엔 쉴 때... 마스터는 안 되겠지... 이번에 정말 어디가서 좀 친다는 얘기 들을 정도로 하고 싶어. 드럼을 배웠어요. 드럼을 해보고 싶어... 학교 가고 싶어. 음악으로. 드럼으로. 아, 소리가 너무 좋아. 베이스가, 드럼이 ‘둥둥’ 할 때 심장이... 막... (웃음)

 

영화 <카라>에서 김희선보다 김현주가 더 눈에 띄었다는 사람, 손!

 

*인터뷰는 KBS2 드라마 <힐러> 종영 이후 지난 2월16일 압구정동 인근에서 진행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창욱씨가 한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42102485&code=960801)

*사용된 모든 사진은 지창욱씨 소속사인 '글로리어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했습니다.

-릴레이로 인터뷰 하느라 힘드시겠어요.

되게 인터뷰 하면서 얘기하면서 저도 정리도 되고 오히려 인터뷰하는 시간이 저한테는 작품 정리하는 시간? 진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 얘기하면서 저도 계속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하고 작품을 했었고, 연기적인 면에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고. 개인적으로 정리가 되는...

-설 연휴는 온전히 쉬겠네요?

설...은 쉴 것 같아요. 오랜만에. 가족, 어머니랑 시간을 좀 보내야되지 않을까... 어머니랑 둘이 사는데, 아, 작품을 하면서 너무 어머니, 엄마랑 밥을 거의 못 먹은 것 같아요. 집에서. 엄마랑 밥 먹고 얘기도 좀 하고 그러지 않을까.

-설 연휴 이후엔 바로 뮤지컬 들어가시겠던데요?

지방공연이 남아있어요. 그렇게 많은 회차가 아니라... 성남, 대전, 대구, 부산. 원래 했었던 거라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재공연이라는 게 항상 그런 부담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했었는데 이 똑같은 걸 어떻게 하면 더 좋게 올릴 수 있을까란 고민은 항상 하는데, 그건 저 뿐만 아니라 연출가도 마찬가지고, 다른 배우들도 어떻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를 연습 기간 내내 3개월 정도를 같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도 사실은, 초연과 다른 모습을 보인 것만이 좋은 공연도 아니고, 많이 바꾼다고 좋은 공연이 되는 것도 아니며, 좋은 건 좋은 거 대로 살리고 아쉬웠던 건 나름대로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런 고민을 3개월 동안 같이 했던 것 같아요. 충분히 좋은 공연이 나왔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연출부를 믿고 다른 배우들을 믿고 연습을 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이제 <힐러>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액션씬이 많이 떠오르는 드라마였는데.

그게 액션이 사실은 좀 아쉬운 부분도 있고 한데. 시간적으로 많이 쫓겼던 것 같아요. 액션이 그게 만만치 않은 액션이었는데, 드라마에서 하기에,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더 진짜, 더 멋있고 더 화려한 장면들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아까운 거는 진짜 많이 찍어놓고 방송분량 때문에 많이 드러내는 액션들도 많고. 거의 이제 시간 때문에 촬영을 많이 못하고 최소한으로 줄였던 액션들도 많고. 그게 좀 아쉬웠던 것 같아요.

-거의 직접 소화하려고 했었다던데?

대역친구가 했던 일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대역없이 배우가 전부 다 한다, 이런 기사도 나가고 그랬는데, 사실 제가 다하지는 못하구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는 이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는데 그 이외엔 액션팀이나 대역배우 분들이 도와준 게 많았고. 제가 아무리 잘하고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그런 전문가의 그런 모습들이나 그런 좋은 그림들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편집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저도 액션씬을 찍고 아 이렇게 찍어서 과연 스펙타클하게 나올 수 있을까? 했던 부분들도 방송을 보면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해주셨더라구요. 방송을 보면서 와, 이게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놀랐던 장면들도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채영신을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액션이었어요.

엘리베이터씬 같은 경우엔 그건 정말 짧았는데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던 장면이었어요. 그때가 제 기억으로는 아마 크리스마스날이었던 것 같은데, 이브였는지 아무튼 거의 이틀을 꼬박 그 촬영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우울하기도 했었던 장면이었는데. 하하하. 제가 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스탭들이 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는 장면을 찍은 게 있는데, 그 장면이 아마 그래서 기억에 더 남는 것 같아요.

-정두홍 감독님과 함께 하셨죠?

정두홍 감독님께서 원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 직접 안 나오신다고 들었는데, 감독님이 직접 또 나오셔가지고 되게 애정을 갖고 해주셨어요. 사실은, 중간에 거의 4회 때부터 바뀌었거든요, 액션팀이. 근데 이제 중간에 들어오셨는데 되게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해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열심히 해야겠구나. 사실은 더 많이 얘기하고 싶고, 더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게 굉장히 많이 안타까웠거든요. 그래서 정두홍 감독님도 현장에 와서 상황을 보고 최대한 그 상황에 맞춰서 그러니까 뭐, 대본상에 길었던 장면들도 여건 안되면 줄이기도 하고 상황에 맞춰서 되게 하기 급급했던 것 같아요. 저도 현장에 가면 액션 외우기에 바빴고, 그래서 작품에 대해서 더 얘기를 하고, 배우의 감정이나 감독님 생각? 그리고 무술팀들의 생각들 이런 걸 좀 더 소통하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 이게 액션드라마가 쉽지만은 않구나, 촉박한 시간에서 액션을 찍는 게, 만만치가 않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는 좀 어땠어요?

저는 남들보다 체력이 좋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도 남들보다 잘 버티는 것 같아요. 이번 현장에서는 웃자, 였던 것 같아요. 행복하게 하자. 그랬는데 정말 너무나도 행복했던 작품이었고, 즐기면서 했던 것 같아요. 하다보니까 몸은 진짜 많이 힘든데, 그래도 스탭들 보고, 다른 선배들 보고, 보면서 웃으면서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너무 재밌게.

-서정후란 캐릭터는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캐릭터를 잡을 때 너무나도 많이 혼란스럽고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기황후>의 타환이라는 인물은 아주 명확하고 또렷하거든요, 그 인물의 색깔이. 굉장히 나약했고 많이 흔들렸고, 정말 컴플렉스가 사람 행동에 드러났고, 그렇게 명확하고 뚜렷할수록 캐릭터를 잡기는 쉬워요. 보여주면 되니까. 그런데 서정후라는 인물은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컴플렉스나 트라우마는 있지만, 그게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해야될까, 분명히 이 아이는 어떻게 보면 엄마한테 버림받아진 아이일 수도 있고, 어른 없이 자랐고, 되게 주변에 사람을 두고 살아오지 않았고, 되게 뭔가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더라구요.

근데 분명히 그런 아이였으면 어두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제가 초반에 캐릭터를 잡을 때 굉장히 어두웠었어요. 되게 어둡게 설정을 하고, 심지어 이런 아이라면 정신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한테 좀 도움을 청할 정도로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자란 아이라면 우울증이라든지, 행동으로 과거로부터 오는 경험으로부터 오는 행동의 버릇이나 습관들이 있지 않을까, 계속 그런 쪽으로만 생각을 했었나봐요. 그래서 저는 계속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대본을 다시 보니 대본상에서는 이 사람이 너무 밝은 거예요. 아무 것도 티 안 나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랑 대본에 나와있는 그 텍스트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러니까 매치가 안 되는 거죠. 그 캐릭터를 갖고는 이 대본을 읽을 수가 없었던. 그래서 작가님한테 다시 여쭤봤더니 작가님은 ‘아니다, 그냥 차라리 웃었으면 좋겠다. 되게 시니컬했으면 좋겠고, 그냥 티가 하나도 안 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 그 선을 잡기가 되게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하고 그만큼 얘기도 많이 하려고 했었고, 감독님하고도 얘기를 하려고 했었고, 그렇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만들어갔던.

-원래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네, 굉장히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그게 가장 뿌리가 되는 작업이 아닐까. 가장 공도 많이 들이고 가장 많이 힘들어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이 받는 작업이기도 한데, 또 그만큼 뭔가 그렇게 하나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나도 재밌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서 많이 찾는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서정후란 캐릭터에 공감이 잘 되던가요?

사실은 배우 스스로가 그 인물에 공감이 잘 가는 면도 있고, 안 가는 면도 있는데요. 공감이 잘 안 가면 공감이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을 하고, 내가 살아온 길이 내 길이지만 그 길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진짜 내가 봤을 때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분명히 그들 입장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거죠. 그들 입장이 있는 거고 그래서 정후도 마찬가지로 내가 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인 거잖아요. 근데 분명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해되는 대로 연기를 하면 그럼 정후가 아니라 나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서정후란 인물이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처음에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 했던 얘기가 아마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서정후라는 아이는 이 시대에 어른 없이 자란 젊은이들의 표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저한테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지표가 됐던 것 같아요. 뭔가 서정후라는 인물은 정의감이라고는 진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아이고, 단지 나의 목표와 나의 꿈, 그냥 나 혼자 내가 좋아하는 무인도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거야.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지금 힐러로 돈을 버는 거고. 내가 이 일을 함으로 인해서 누가 잘 되고 잘못 되고 누가 가슴이 아프고 이런 정의는 사실 나는 신경 안써, 정의의 기준은 내 안에 있는 거지 남들은 신경 안써, 이런 인물이거든요. 근데 사실 그게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성향이나 특성의 단편적인 부분을 잘 드러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이 시대의 젊은이에는 지창욱씨도 포함이 되는 거예요?

네, 그렇죠. 저도.

-그럼 지창욱씨도 그런 성향이라는?

저도 사실은... 뭔가 이렇게 과거 세대가 나오잖아요. 해적방송을 하고, 민주화를 외치는. 그러면서 희생을 하고. 저는 그게 뭔가, 그게 뭐길래, 저렇게 도망까지 다니면서 하나. 왜냐면 그런 자유에 대해서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고.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정후가 그런 것 같고. 뭔가 정의가 뭘까, 그냥 내가 내꿈을 위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내 목표를 향해서 가기 바쁘지. 과연 내가 살면서 정의나 도덕 같은 걸 생각은 해봤을까 했을 때.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후가 이 시대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반영하는지가 이해가 가는 것 같아요.

-그럼 혹시 <힐러> 찍고 나서 변화를 느낀 게 있나요?

글쎄요. 사실 시선이 변했다거나 제가 뭐가 바뀌었다는 건 잘 체감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그런 것들은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답답하고 억울했던, 뭔가 답답했던 부분은 뭐였냐면, 김문호 대사 중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도’ 그런 뉘앙스의 대사였어요. 그러니까 정후가 ‘내가 뭔가 할 수 있게 얘길해줘’ 했더니 문호가 ‘나도 그 오랜 시간 동안 시도를 하고 찾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가 저한테는 많이 울컥하더라구요. 뭔가 개인의 한계를 느끼게 했었던 대사였고. 어떻게 보면 정말 나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을 내가 혼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라는 말인데, 사실 그 말이 굉장히 공감이 가면서 울컥했던...

-<힐러> 기획 의도 자체가 서정후·채영신처럼 세상사에 관심 없던 두 사람이 뜻하지 않게 뭔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가는 거잖아요. 지창욱씨 세계관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는지요?

그런 질문은 한번 받았던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서정후 같은 상황에서 맞서 싸울 수 있느냐고.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힘들다. 나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는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열광한다고 생각을 해요. 이게 사랑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도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흔치 않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판타지를 느끼고 거기에 열광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저는 ‘정후나 문호처럼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울 용기는 없지만, 혹여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열광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가 가상을 그려내긴 하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창욱씨가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힘은 어땠나요?

음... 이번 드라마 하면서 결실 중 하나는,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했던 결심 중 하나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은 시청률에 따라서 스탭들이나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드라마라는 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 와중에 이제 시청률이 안 나와도 정말 즐겁게 촬영하고자 했었던...

-시청률만으로는 <힐러>가 뒷심이 좀 달렸다라고 보여지는데, 현장에서 분위기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부분들이 있을까요?

음... 굉장히 행복했는데, 정말 다 드러냈던 것 같아요. 나 지금 너무 좋아, 나 지금 너무 즐거워요. 뭔가 스탭과 배우의 관계에서 있어서 저 사람은 스탭이고, 난 배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묘한 벽이 생겨요. 그게 스탭들이 먼저 깰 수도 없고 사실 배우가 먼저 해야하는 임무인 것 같아요. 제가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작가님도 마찬가지고 다른 스탭들도 마찬가지고 나랑 같이 일하는 형, 같이 일하는 동생, 같이 일하는 누나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현장에서 더 거리감 없이 다가가게 되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다가가니까 그분들도 같이 마음을 열어주고 그랬었던 것 같은데. 되게 재밌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피곤한 날도 다 같이 피곤하니까 그게 또 갑자기 웃기기도 하고. 웃으면서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특이한 사진 올렸었는데, 그거 본 네티즌들이 지창욱씨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고 그랬는데요.

되게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해요. 이게 저한테 정말 큰 활력소고, 그런 짓들마저 안 하면 제 삶이 너무나도 삭막해지지 않을까. 하하.

-왜 그렇게 느껴요?

음, 그냥 평범하게 촬영을 하고 밥을 먹고 그런 것 보다는, 일종의 일상 속에서의 일탈인데 뭔가 재밌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괜히 말도 안 되는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그것도 또 사진 찍어서 올려보고... 되게 누가 보면 아, 왜 저래 라고 할만한 일들을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노는 거라 생각하고 굳이 감출 필요는 없는 거죠. 그것도 제 일상이니까. SNS라는 건, 사실 이건 제 생각인데, 그걸로 굳이 제 거창한 신념 같은 것들을 나타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내 사진 찍어서 올리고 단지 그냥 놀이문화 같은, 놀이기구나 장난감 중의 하나 같은 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쓸데없는 사진도 많이 올리고 그래요.

-요즘 스타 일상을 관찰하는 형식의 예능이 많은데, 혹시 그런 쪽에서 지창욱씨가 일상에 재미를 주는 면이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는 예능 울렁증이 있었어요. 안 했어요. 못했죠. 사실 하고 싶은데, 그런 예능은 웃겨줘야 하는데, 내가 나가서 사람들을 어떻게 재밌게 해줄 수 있을까? 이런 뭔가 이런 압박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예능 나가면 오히려 더 말을 못 하겠고. 뭔가 내가 다 까발려진다는 느낌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너무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와서는 보니까 물론 예능하는 사람들 좋아하고 저도 예능을 자주 보고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거는 제 철학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를 수도 있고, 과연 제가 예능에 나가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라고 했을 때 나를 보는 시청자는 누구인가 했을 때, 배우 지창욱이 나가서 인간 지창욱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그걸 좋아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오히려 배우 지창욱으로서는 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 제가 본업으로 돌아갔을 때, 그걸 과연 배우 혹은 그 역할로 볼 수 있느냐 했을 때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더라구요. 그냥 인간 지창욱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사실 제 주변 사람들은 그러거든요. 친한 사람들이 제가 나오는 드라마를 봤을 때 야, 막 너 오글거린다고 이런 반응들이 나와요. 하하. 그렇게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사실은 제가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한 번 다 놓으면 그냥 편해진다고 하더라구요.

하하하하... 그냥 저는 어느 정도 배우로서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그게 쓸데없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일 수도 있고, 제가 배우로서 더 먹고 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그냥 드라마나 영화나 극으로 나왔을 때, 그 극의 인물로서만 비춰지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심스러워지더라구요. 나가더라도 가끔씩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거기 익숙해지면 아, 지창욱은 저런 사람이야. 어리버리한데도 있고. 그런데 드라마에서 역할 보니 안 그렇더라, 그렇게 겹쳐지면 뭔가 별로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맥락에서 보면 드라마 한편으로 이미지가 굳어지기도 하잖아요. 지창욱씨를 보고 아직 <웃어라 동해야>의 동해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거고.

그건 사람들마다 다른 것 같아요. 동해를 떠올리는 분도 있고, <기황후>의 타환을 떠올리는 분도 있고, <힐러>의 서정후로 기억해주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 희한한 게 <솔약국집 아들들>의 송미풍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분들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좋아요, 저는. 그 작품들을 봐주신 거니까, 제가 만약 누군가의 기억에 동해로 남아있다면 그 작품을 좋게 봐주신 거니까요.

-트렌디한 미니시리즈에 대한 욕심은 없으세요?

되게 있죠. 음... 누구나 다 한번쯤 스타를 꿈꾸고, 누구나 다 인기를 얻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있을 건데, 저도 어렸을 때는 되게 트렌디한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이 갑자기 되어서 갑자기 인기도 많아지고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 싶고 이런 욕심을 품었던 적이 없다고 하면 사실 거짓말이에요.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이런 길을 걷게 됐고, 그렇다고 막 제가 어거지로 그래, 나는 일일극부터 주말극부터 천천히 올라가야지, 일부러 그랬던 것도 아니고. 하다보니까 일일극, 주말극, 사극을 하게 됐는데, 그게 제 운명이고 길인 것 같아요. 어거지로 막 청춘드라마, 트렌디한 드라마에 어거지로 나가서 만들 수는 없는 거고...

-사실 지창욱씨는 올드한 사람이란 이미지도 있어요. 그래서 트렌디 미니시리즈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해지기도 해요.

박민영 누나가 저를 보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되게 고지식하고, 되게 그냥 딱 바를 것 같은, 곧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미지였나봐요. 그냥 저는 사실 항상 매번 똑같았고, 내가 생각하는 나는 되게 정말 어리고 어리광도 많고 투정 부릴 때도 있고 진짜 많이 까부는 사람인데, 남들이 봤을 때 전 정말 너무나도 바른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걸 박민영 누나가 다시 한번 알려줬는데... 그런데 글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이랬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그런데 아직까지 사람들이 못 본 면이 그만큼 많다라는 건 저한테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제 안에 정말 많은 모습들이 있는데 그걸 연기적으로 잘 풀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힐러> 이후 제의 받는 작품의 변화가 있나요?

음... <기황후>, <힐러>를 통해서 그 이전에 비해서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들어오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고, 어찌보면 배우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여러가지 작품들, 캐릭터가 들어오는데 그 중엔 사극도 정말로 많고, 들어오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잘 읽으면서 신중하게 선택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작품을 주신 분들한테도 그게 예의인 것 같고, 제 스스로한테도 그게 맞는 길인 것 같아서 신중하게 보고 있어요. 밝은 것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어두운 것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골고루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럼 제의 받은 작품들을 일단 제쳐두고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음...... 사실 <블러드> 같은 의학드라마에 나오는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작품 선택은 시기나 운명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힐러>도 그랬고. 사실 <힐러>를 찍으면서 작가한테 믿음을 받는 배우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됐던 작품이 된 것 같아요. 저를 믿어주셨고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느끼고... 새롭게 성장하게 됐던 작품인 것 같아요. 그건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나를 믿고 있구나 라는 건, 저를 보는 눈빛이나 목소리나 그런 부분에서 미묘하지만 받는 사람은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믿지 못한다면 그것도 미묘하지만 느낀다는 거죠. 이번에 감독님, 작가님, 다른 스탭분들이 저를 믿어주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던 게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발렌타인데이엔 뭐하셨어요?

발렌타인데이엔... 술을 마셨어요. 하하하하. 아... 발렌타인데이 때 정말 오랜만에 만난 형이랑 친구랑 셋이서 우울하게 이자까야에서 술을 먹고, 친한 사람들과 술을 밤새 먹구요. 어제는 15일이었나요? 어제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맨 프럼 어스>란 연극을 봤어요. 이원종 선배님이 제작을 한 작품이에요. 저도 너무나도 하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그걸 봤죠. 보고 거기 계신 분들이랑 같이 술을 먹고, 1시까지 마셨는데 너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정규수 선배님(<힐러>의 오비서)과도 같이 마셨는데, 마지막엔 같이 춤추면서 끝났던...

-춤을 췄다고요?

술집에서. 하하하하. 이원종 선배님이 춤을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겼어요. 하하. 몸을 흔드시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동영상을 찍고 저도 흥에 겨워서... 하하. 정말 그 팀이 행복하게 작업을 하더라구요. 정말 부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많은 작품 하셨고...

(매니저: 이제 정리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사진 촬영도 있고...)

너무 짧아서... 다음부턴 2시간씩 할까봐요. 하하. 아, 그런데 방금 전에 어떤 거 물어보려 하셨죠?

-지금까지 많은 작품 하셨고, 대중적인 인기도 많이 얻었고, 연기력도 호평을 받고 있는데 여전히 꾸준히 달린다는 느낌이에요. 고지식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하고.

근데 제 안에 고지식한 면도 분명히 있어요. 제 안에 고집도 있고, 일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는 고집이기도 한데 진짜로 제가 인기를 얻고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고 이런 건 다 지나가게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전환의 계기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기황후>란 작품이 잘 됐지만 그걸 제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거죠. 누군가가 저에게 <기황후>나 <힐러>가 어떤 작품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 전 단지 지나가는 작품이고 저에겐 좋은 추억이 됐던 작품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정도로 그 작품은 언젠가는 지나가고 잊혀진다는 거죠. 다만 제 가슴에 좋은 사람들과 작품을 했다라는 추억으로 남아있고 시간 속에 계속 기억이 되는데, 그만큼 그 작품으로 제가 바뀌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걷고 있는 거죠. 또 어떤 작품은 잘 안 되거나 혹평을 받아서 사람들한테 잊혀질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한 순간이라는 거죠. 그것도 지나가는... 다른 작품으로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걸 떠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고, 어제 술자리처럼 사람들과 즐기면서 하는 것 자체가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모습도 제 모습이라는 거죠.

(매니저: 이제 사진 촬영 시작해도 될까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게 인터뷰 시간이 짧으니까 끝나고도 계속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느낌이에요.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힐러> 지창욱이 코트 좀 비싸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