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폴 매카트니가 다녀갔습니다. 지난 2일 잠실벌의 주인공은 LG트윈스도, 두산베어스도 아닌 폴 매카트니였습니다. (공연 리뷰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031243171&code=960802) 장장 160여분에 걸친 공연, 그것도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내한공연의 감동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짤막한 기사로 요약하며 쓰다보니 죄스런(?)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서 없는 글이라도 정리해 남겨두면 이 감동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더 생생하게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몇 가지 포인트로 추려서 남겨봅니다. 혹시 폴 매카트니 공연 다녀오셨나요? 그럼 일단 두말 할 것 없이 명곡 'Hey, Jude'에서 터져나온 감동적인 '떼창' 한번 더 함께 감상하시죠^^

1. 우리는 열혈 한국팬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폴 매카트니지만, 공연은 폴 매카트니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극성스러운(?) 한국팬들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그에게 선사했습니다.

일단 카드섹션(?).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나올 때 운동장에 마련된 이동식 의자에 앉아있던 팬들이 일제히 머리 위로 종이 한 장을 펼쳐들었습니다. 거기엔 붉은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죠. 이때만 해도 하트가 그려진 종이 반대쪽엔 영어로 'NA'가 적혀있길래 전 솔직히 뭔가? 했습니다. 알고보니 나중에 'Hey Jude'가 나올 때를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곡 후렴구가 계속 "NA, NA, NA, NANANANA~"거리잖아요.

이 퍼포먼스를 본 폴 매카트니는 진짜 감동한 듯 했습니다. 고개를 연신 절레절레, 두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듯 몇번이나 움켜지더니 스피커 위에 팔을 올려 손으로 턱을 괴고 한국팬들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이를 보는 한국팬들도 역시 감동... 감동이 감동을 부르는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또 'Let It Be'가 나올 때 경기장을 가득 수놓은 스마트폰 플래시 라이트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몇해 전부터 관객들이 이 퍼포먼스를 즐겨 쓰고 있는데,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동영상에서 잘 감상할 수 있네요.

하나 더! 폴 매카트니가 'Hey, Jude'를 부르고 잠시 무대 뒤로 사라진 사이, 팬들은 후렴구 "NA, NA, NA, NANANANA~"를 무반주로 열창했습니다. 이윽고 등장한 폴 매카트니와 그의 밴드가 관객들의 소리에 맞춰 반주를 자연스럽게 깔아주는 광경이 연출됐습니다.

2. 한국말 연습 좀 하셨쎄요?

폴 매카트니는 원래 월드 투어를 하면서 그 나라 말로 팬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내한공연도 예외가 될 순 없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첫 인사는 "안뇽하쎄요! 서울!"이었습니다. 보통의 내한 스타도 이 정도는 하니 별로 감동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폴 할아버지는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한국와서 좋아요! (잠시 머뭇머뭇) 드... 디... 어!"

아마 무대 바닥에 있는 모니터에 자막이 나오나 봅니다. 한국말을 할 때마다 모니터를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대박"이라는 말도 배워온 모양입니다. 또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마워요"라는 말도 하더군요. 같은 말이지만 다른 표현을 알고 있다는 게 남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귀엽게도(?) 몇 마디 하시더니 "내 한국말이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소통은 영어로 이뤄졌죠. 그래도 폴 할아버지는 좀 다릅니다. "번역된 내 말이 옆에 있는 스크린에 잘 나오고 있냐"며 확인도 하시더군요.

이날 공연에서 한 가지 '에러'가 있었다면, 폴 매카트니의 말을 번역해 스크린에 띄워주는 시도(?)였을 겁니다. 마치 과거 PC통신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파란 바탕화면에 흰색 글씨로 폴 매카트니가 방금 하는 말이 한글로 번역됐는데요, 문제는 속도가 정말 PC통신 모뎀처럼 느렸다는 점!^^; 가끔 오타도 띄워주셔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 주셨습니다.

3. 역시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이날 공연에선 젊고 어린 관객들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50~6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이든 관객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비틀스 노래를 들을 수 있단 점 때문이겠죠! 어느 투어에서든 폴 매카트니는 대개 셋리스트의 3분의2 정도는 비틀스 곡들로 채웁니다. 한국 공연 셋리스트 (<-여기에선 폴 매카트니 월드 투어의 셋리스트를 거의 전부 볼 수 있네요)

비틀스 노래 중 특히 전세대를 아울러 가장 어필하는 곡 중은 'Yesterday'가 아닐까 합니다. 투어에서 이 곡은 대체로 앙코르 공연에 들어가 있죠. 이날도 공연이 막바지에 이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자 여기저기 관객들 사이에선 "'Yesterday'는 왜 안 부르는 거냐"는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Yesterday' 영상입니다! 정말, 잔잔한 떼창이 감동이네요 ㅠ_ㅠ

4. 폴 매카트니는 아직 '팔팔'했습니다.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지난해 그는 예정돼 있던 내한공연을 취소한 바 있습니다. 일본 투어 직후 갑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한국팬들 사이에선 "폴 매카트니가 결국 내한공연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예측도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모두가 확인했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여전히 2시간이 넘는 공연을 거뜬하게 해낸다는 것!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진다느니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날 공연에선 크게 거슬릴 정도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2시간40분 내내 딱히 쉬는 시간도 없이 공연만 했는데도 말이죠.

여기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대체 왜 그는 공연하는 내내 물을 마시지 않을까요? 평소 채식을 해서 몸 안에 수분이 풍부한 걸까요......? 어쨌든 폴 매카트니는 아주아주 '팔팔'해 보였습니다.

공연을 마친 폴 매카트니는 다음날인 3일, 트위터에 공연 소감을 밝혔습니다. "Fantastic climax to the Asian leg. Korean fans gave us the best welcome ever. We love them!" 번역하면 "아시아 투어의 환상적인 클라이막스. 한국팬들은 우리를 그 어디보다 더 반겨줬습니다. 사랑합니다." 대략 이 정도 되겠네요.

이렇게 폴 매카트니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지나갔습니다. 그를 볼 다음 기회란 게 과연 있을지! 그래도 이날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낀 팬들이라면 분명히 기다릴 것 같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분명히 "또 다시 만나자"라고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현대카드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 굵직굵직한 아티스트들을 이렇게 매년 불러주시니, 높은 연회비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대카드 하나 만들어 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냥 문득 든 생각입니다...... 현대카드 홍보 목적 전혀 X)

뒤늦게 알았지만, 폴 매카트니 공연에 초청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연 시작 전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박원순 시장이 폴 매카트니에게 세월호 참사 추모 엽서를 내밀며 한 마디 부탁하자, 폴 매카트니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with love from me, b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