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2건

  1. 욕심 많은 배우, 박민영 인터뷰 (4)
  2. (섹)드립 치는 마이클 부블레
  3.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4. 약하지만 깊은 건축 (1)
  5. 총, 균, 색(色)
  6.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 (1)
  7. 내릴 수 없는 이상한 배, 대한민국 (2)
  8. 엄마야 누나야 작은 집 살자? (2)
  9. '머리끄덩이'를 붙잡는 집단기억
  10. 어느 기업 대학 잔혹사

 

*인터뷰는 KBS2 드라마 <힐러> 종영 이후인 지난 2월17일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에서 진행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박민영씨가 한 말들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241502491&code=960801)

*사용된 사진은 모두 박민영씨 소속사인 '문화창고'에서 제공했습니다.

-오늘이 릴레이 인터뷰 마지막이라 이제 시원하시겠어요.

네네. 이제 처음으로 쉴 수 있으니까... 헤헤.

-설 연휴는 온전히 다 쉬시겠네요.

네, 그럴 것 같아요. 낼이 이제 첫 휴가고... 연휴더라구요. 쉬려고 해요.

-<개과천선> 이후에 바로 <힐러> 촬영 들어갔는데.

아니, 그런데, 그렇게 못 쉬었다는 느낌은 없어요. 7월에 이 작품을 정했는데 첫 방송이 12월에 했거든요. 첫 촬영이 10월1일에 들어갔는데 9월까지는 대본리딩하면서 충분히 두달 동안 캐릭터 만들 시간이 있어가지고... 작가님 많이 만나뵙고. 감독님 만나뵙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연예 뉴스도 많이 보고. 캐릭터 처음에 이제 잡아갈 때, 보통 제가 했던 한국 드라마들보다 그 캐릭터를 연구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었어요.

촬영 들어가고 처음 초중반까지는 그렇게 힘든 스케쥴은 아니어서, 나중에는 좀 힘들어졌지만, 처음엔 충분히 씬 같은 거에 대해 얘기하고 갈 시간도 있었고... 그래서 처음에 머리 같은 것도 헤어컨셉 잡고 시간도 많아서 여러번 고민과 여러 번의 커트 끝에 제일 좋은 것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서... 막 급하게 들어갔단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개과천선>은 급하게 들어갔는데, <힐러>는 여유 있게 들어가서, 여유 있게 찍고, 사전에 촬영 회차가 많이 나온 편이라 다른 드라마보다는 여유 있게 찍은 것 같아요.

-채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연기면에서는 어떤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셨었나요?

일단 캐릭터의 접근법에 대해서... 굉장히 좋은 배우들은 인위적인 장치들에 상관없이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이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저는 어떤 장치들의 도움을 받는 거죠. 그 다음이 이제 외부적으로 좀 많이 제가 갖고 있던 여배우로서의 조그만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일단 버려내는 작업을 한 다음에, 이제는 캐릭터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그 친구의 인생에 대해서... 저의 사소한 습관이나 표정, 모든 것들을 다 송지나 작가님이 잘 캐치를 해주셨어요. 그런 걸 메모한 다음 채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많이 반영을 해주셨죠. 그러면서 만들어 가고, 이 친구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나서 중반 정도 되니까 외적인 장치가 필요없게 되고 몰입도가 생기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특별히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영신이란 캐릭터에 감정이 동화돼서... 동일시 되는 순간이 딱 있었던 거죠. 그런 순간이 오기까지 제가 했던 노력이라고 하기는, 다른 배우들도 다 하시는... 연예부 기자면 연예부 기자를 연구하고, 이 분들은 평소 어떠한 습관이 있고 어떤 생활방식을 영위하고 있고, 그런 것들을 연구하면서... 직업의식은 어떤지, 그렇게 하고...

그런 다음에는 영신이라는 애가 어릴 적에 상처가 많은데, 트라우마가 많은 아이라 그런 거에 대한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아동학대나 입양시스템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찾아보고...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자료들, 객관적인 데이터를 연구하는 거부터 시작해서 그 담에 이제 열심히 공부한 공책을 덮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모범생 스타일 접고, 충분히 했으니까 다 내려놓고 노는 거 신경 쓰자’고... 그래서 전 말 잘 들으니까, 헤헤. 이제 공책 덮고, 이제 정말 놀 수 있어야겠다 해서 비우는 작업 했고... 이미지 트레이닝 하고 대본은 이미 숙지가 다 돼있는 상태였어요. 한 7, 8회까지는 대사가 거의 다 외워져 있는 상태일 정도였어요. 그렇게 차근차근히 가져가니까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나 드라마에 대한 자부심이 남 다를 수밖에 없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게 생기다 보니까 주인의식이 아무래도 들게 되고, 드라마 끝나고 자진해서 이렇게 인터뷰를 몇년 만에 하는 것도 이렇게 재밌게 작업하고 정말 모두가 힘을 합쳐 만든 좋은 드라마를... 사실 시청률이 그렇게 높진 않았어요. 끝나고 나서라도 많은 분이 이 드라마를 다운로드해서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오게 됐어요. 이렇게 뭔가 자신있게 인터뷰 할 수 있음이 너무 좋은 거죠, 저는. 원래 드라마 끝나고 자신 없으면 아시다시피 인터뷰하기 껄끄러운 적이 많거든요. 부끄러울 때도 있고... 그런 점에선 좋은 작품이어서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드라마들 보느라고 <힐러>를 놓치신 분들이라면 1회부터 쭉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채영신이라는 캐릭터가 애착이 가는 이유가 있나요?

음...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는 저한테 있어서 터닝포인트 같은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뭐냐면, 제가 20대때 조금 한 다섯살이라도 어렸을 때? 이런 작품을 만났으면 아마 나 어떤 드라마 찍었는데 좋은 분들하고 작업했어, 좋았어, 라고 얘기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어느덧 9년차 되더라구요. 그런데 나름의 슬럼프도 겪고, 그걸 헤쳐나가기도 하고, 2년간 공백기도 갖고... 나름 열심히, 그리고 인간답게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런 제가 봤을 때 이런 드라마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거죠. 굉장히 소중함을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아는 거예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그리고 이런 캐릭터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알고... 흔히 우리 드라마가 영웅물도 많이 나오고, 어떻게 보면 남주인공 2명과 여주인공 1명의 처음엔 삼각관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여자들이 사랑하는 영웅물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 영신이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시기 위해 얼마나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아껴주셨는지 느껴져서 저한텐 좋은 캐릭터인 거예요. 제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흔한 우리나라 영웅물에서 여자는 항상 보호받고, 남자주인공한테 어찌 보면 ‘민폐’라는 말을 제가 싫어하지만, 민폐 여주인공이 많은 게 현실이거든요. 그렇게 안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는지가 보여서 제 눈에는... 그리고 다르거든요. 정후의 대사에도 있는데, 하룻강아지가 불길 속에 모르고 뛰어드는 거랑 그 불길 속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면서 뛰어드는 건 다른데, 영신이란 애는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 뛰어드는 용기가 있는 애였어요.

이런 캐릭터가 잘 드러나 있는 씬이 5회였는데, 영신이가 황 사장 찾아가서 폭력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어렸을 때 그 폭력 트라우마 때문에 과호흡이 발생하고,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리버리한 후배인 봉수를 보고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하고... 봉수는 뒤에서 영신이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이 웃고 있는 게 있어요. 이 둘의 관계가 거기서 정말 잘 설명돼있다고 봐요. 흔히 볼 수 없는 좋은... 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굉장히 예쁜 캐릭터를 주셔서 지금 제 마음에는 김윤희가 밀려날 정도로 좋아졌어요.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한번도, 저는, ‘얘가 이 상황에서 왜 이 말을 하지? 이 행동을 하지?’ 타당성과 당위성을 찾게 되잖아요, 보통. 그런데 그랬던 적이 없어요. 그냥 ‘아, 이 대사를 어떻게 하면 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맞는 표현으로 갈까’ 고민을 한 적은 많았어도. 오히려 감탄을 한 적은 많았죠. 봉수가 힐러라는 걸 알게됐을 때 굉장한 충격이잖아요. 그런데 이랬을 수도 있어요. 여자 주인공이 ‘아니,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는 이런 말조차도 한번도 안해요. 그냥 처음에는 이 친구가 떠날까봐 모르는 척을 해요. ‘아니야, 그 대신 내일은 꼭 나오라’고. 그러고 집에 가서는 ‘그 나쁜 새끼가 여태 날 속였다’고 아빠한테 말하면서 ‘그런데 나 걔가 떠날까봐 얘기 못했어’라고 하고 생각 정리를 한 다음에 그 날, 걔를 만나고 바로 ‘사실 나 너 힐러인 거 아는데 기다리겠다’고. 바로 나와요. 전혀 끄는 게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꼬여야지 자극적으로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정후라는 캐릭터마저도 ‘나 사실 힐러예요’를 그렇게 빨리 걸리자마자 문호한테 얘기할지 몰랐고... 얘네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일을 그냥 곧바로 얘기를 해요. 사람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근데 너 사람 죽인 적 있어?’ 아니. 이렇게 가요. 그게 어찌 보면 조미료를 좀 많이 넣어야 더 궁금하고 자극적이고... 그런 입맛에 길들여진 시청자들한테는 너무 순할 수 있어요. 너무 착할 수 있고. 그런데 저는 그런 점이 우리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생각이 드는 거죠. 자극적인 설정 없이 담담하게 담백하게 풀어낸다는 게... 신파 같은 것도 작가님이 안 좋아하셔서 명희와 영신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 신파적으로 풀면 안 좋을 것 같아서 마지막에 그렇게 정리를 하셨대요. 제 나래이션으로 '사실은 엄마가 알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끝내고... 그런 담백한, 담담한 매력이 있지 않을까...

영신의 캐릭터에 있어서도 상처 받았다고 맨날 울고 짜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공룡의 뇌에 빗대서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고, 얘가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은 게 아니거든요. 분명 상처를 많이 받고 아픈 앤데, 그냥 밝게, 그런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게. 난 성격도 이렇고 춤하고 노래로 해, 그렇게 풀고... 그런 담백함이 하면서도 즐거웠고, 연기할 때 재밌고 좋았어요.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은 듯한 그런 건강함이 느껴져요.

-그런 담백함이 오히려 낮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요?

마지막에도 한 자리 시청률로 끝나긴 했는데... 중간에 한번 1등까지 한 적도 있는데 그 다음에 축구... 헤헤. 축구 방송 때문에 그 때 많이 놓쳤어요. 그런데 저희 드라마가 그렇게 쉬운 드라마는 아니어서 중간 유입이 쉬운 드라마는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좀 어려운 구성이 있대요. 큰 그림으로 가서는 이해가 가는데, 작은 면에서는 어른들이 볼 떄는 좀 복잡하다는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보시면 이해가 될 수가 있는데, 중간 유입이 쉽지는 않아서 아마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너무 담백해서 자극적인 요소가 없었던 건 사실인데... 제 개인적으론 정말 자극적이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애정씬을 많이 찍어본 적이 없어요. (하하하하)

저는 마지막 키스씬이 2011년이었는데... 헤헤. 저는 되게 자극적이었거든요. 하하. ‘어? 이걸 어떻게 찍지’ 할 정도로 자극적인 장면도 있었는데... 그리고 나름 피도 많이 나고요, 또 황 사장을 정후가 때리는 장면에서는 속 시원하다, 이런 생각도 들고요. 비주얼적으로 많이 뛰어다니고, 그랬다고 생각하는데 좀 부족했나봐요. 하하. 많은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마지막회에 정후가 총을 맞길래 아, 이제 정말 드라마처럼 가는구나, 그런데 5분 도 안돼서 연기하는 걸로 나오고, 또 뒤에 바로 풀어주셨거든요. 마지막까지 참 우리 드라마스러운 엔딩이었다고 생각해요. 1회처럼 일관성 있게 정후와 영신의 나래이션으로 끝나거든요. 그런 방향성을 잃지않고 끝까지 주관대로, 일관성있게 밀어붙이는 힘이 송지나 작가님의 존경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마지막까지 들었어요.

-제작발표회 때 마음껏 망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부분은 어땠어요?

오히려 편했어요. 불필요한 욕심들을 좀 버리고 나니까 연기할 때 우는 씬 같은 거 할 때 예전 같으면 중간에 메이크업 수정이 들어가야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싫은 거예요. 아니, 누가 울면서 그렇게 이쁘게 수정하고 딲으면서 울진 않잖아요. 몰입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그런 감정씬을 찍으니까 아예 너무 벗겨졌더라고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제가 버리는 작업들을 초반에 꾸준히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을 해요. 처음에 저는 안 힘들었거든요. 주변에서 좀 아쉬워 하시긴 했어요. 예전에 나온 드라마들보다 화면에서 덜 예뻐보이는 게 아닌가... 제가 봐도 그렇게 나왔어요. 저랑 우리 회사나 엄마는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런 모습이 그게 가장 저 같대요.

제가 평소에 메이크업 잘하고 다니느 스타일도 아니고, 저는 그냥 안하고 다니거든요.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표정 짓고, 카메라가 어디 있든, 슈퍼 로우앵글로 잡아서 턱살이 두턱으로 나오든, 정말 안 예쁜 앵글로 잡혀있든... 조명이 액션 로맨스다 보니까 로맨스만 가득한 드라마보다 조명도 굉장히 강하고 그런 점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냥 머리가 망가지고 떡이 지고 갈라지고, 메이크업이 다 날라가고 해도... 예전처럼 색조를 안해서 흐리멍텅하게 보이더라도 그냥 오히려 내 눈동자에 집중할 수 있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 같아서 저한테는 굉장히 재밌었어요. 하면서도 신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지창욱씨는 노래를 정말 잘하고, 유지태 선배님은 무용을 전공했는데 그 앞에서 춤을 그렇게 추고 그런게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한번 시작하니까 저도 저한테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는데, 욕심이 나더라구요. 뭘하면 더 웃길까? 제 연기에 송지나 작가님이 아쉬워하셨던 부분이 제가 여태까지 드라마에서 경직된 듯한 모습을 많이 보셨대요. 항상 올바르고 곧고 정의감 넘치고 그래서... 좀 풀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이번 드라마에서 정말 풀어져서 힘이 빠져있는 상태를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일단 그게 되니까 아,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번 드라마가 저한테 주는 건, 그렇게 한번 자신을 버리고 보니까 그 다음에는 아예 이번엔 약간의 똘끼를 보여드렸으면 다음 작품에서는 완전히 상또라이가 되고 싶기도 하고... 헤헤. 영신이가 UP&DOWN이 좀 심한 애였는데, 요새 유행하는 다중인격도 잘할 수 있을 거 같고... 약간 깨고 나오려는 맛을 보고 나니까 다음 작품에서는 되게 어려운 역을 한번 치열하게 도전해보면서 깨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됐어요. 저한테는 연기면에서 용기를 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힐러> 기획 의도 자체가 서정후·채영신처럼 세상사에 관심 없던 두 사람이 뜻하지 않게 뭔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가는 거잖아요. 박민영씨 세계관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는지요?

제가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는 게 그 부분이에요. 저도 세상에 관심이 없어요. 제가 어쩌다 보니까 <개관천선>도 그렇고 <힐러>도 그렇고 사회적 메시지를,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런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게 됐지만, 저도 시사면·사회면보다는 연예면을 먼저 보는 그냥 평범한 20대였거든요. 우리가 지금 그런 것 같아요. 정작 관심은 없는데 만약에 가족이 관계됐거나 가까운 사람이 사건사고를 겪게 되면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럼 이제 사회적인 사람으로 변모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까지는 정말 관심이 없고 나는 그냥 나만 잘 살면돼 하는 그런 개인주의가 만연하니까...

저도 그 중에 하나였고. 영신이랑 정후도 그랬어요. 얘네들이 관심이 없다가... 그때 언론통폐합에 관심 있는 애들은 아니었거든요. 정후는 정말 관심이 하나도 없었고 ‘어르신’의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알 게 뭐냐... 그나마 사회부 기자를 꿈꾸는 영신이는 좀 다르지만. 정후라는 캐릭터는 우리 모습하고 다르지 않거든요. 숨는 거 좋아하고. 머리 아픈 거 싫어하고. 의뢰인이 누구든 이름은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게 저의 모습과도 비슷해서 저는 공감을 했어요. 정작 나의 핏줄이나 나의 가까운 사람이 겪기 전까지 관심 갖지 않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래서 저도 많이 배우죠. 송지나 작가님 대본을 보면서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우리 부모 세대들은 이렇게 자유를 외쳤고, 민주화를 외쳤고, 이런 어르신의 존재는... 대사 중에 그런 게 있거든요. ‘이 어르신이 죽어도 새 어르신이 등장할 거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수많은 문식 같은 존재도 있고...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아, 이렇게 돼있구나...

-송지나 작가님은 왜 박민영씨를 선택하셨을까요?

일단 주변의 추천이 있었다고 들었구요. 송지나 작가님을 처음 봤을 때, 그건 나중에 송 작가님 홈페이지에서 제 팬이 보낸 걸 본 거예요. 제가 이걸 유럽에서 처음 봤는데,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3시간 만에 결정을 했어요. <개과천선> 이후에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을 때 김명민 선배님이 쉬지 않고 연기를 하라고 조언도 해주셨고, 그 때 이 대본을 봤는데 제가 했던 <시티헌터>와 비슷하진 않을까라는 걱정과 우려도 있었어요. 그런데 캐릭터 설정을 보고 대본을 보니 얘는 전혀 다른 애였던 거예요. 느낌과 드라마의 전체적인 메시지도 달랐어요. 그래서 매력을 느끼고 도전의식이 생기길래아, 해야겠다라고 3시간 만에 결정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에 24시간 안에 저녁식사 자리에서 작가님과 감독님 뵙고 거기서 잘해야겠다하고 거기서 끝냈어요.

송 작가님이 절 처음 봤을 때, 저의 눈에서 그걸 읽으셨대요. 연기하고 싶다. 진짜 연기를 하고 싶다. 그걸 읽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제가 잘 못 숨겨요. 그래서 예능 같은 걸 많이 못 나오는 이유도 제가 거짓말을 못 하고 제 눈을 숨기지를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걸 읽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 그 눈을 보시고 나서 연기면에서 깨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송 작가님이 저희 엄마랑 연배가 비슷해서인지 몰라도 왠지 엄마 같고, 너무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항상 격려해주시고, 제가 모르는 거에 대해선 속시원하게 말씀해주시고, 평소에 이모티콘도 많이 쓰시고... 저와 소통하려고 노력해주시는 그 모습이 너무 감사했고, 영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제가 좋은 배우 갈 수 있게끔 응원해주신다고 했어요.

끝나고 나서 아, 영신이가 민영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지, 라고 해주셨는데 눈물이 핑 날 정도로 감사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작가님을 만난 건 저한테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배우 한명 한명을 아껴주셨던 자체가 지금도 이쁜 것들 하면서 보고 싶을 것 같다고, 정후랑 영신이가 너무 이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정말 감사하고 지금 다시 7월로 돌아간다고 해도 작가님 감독님 믿고 갈 것 같아요. 드라마 시청률이 지금의 반도 안 나왔어도, 10등 중에 10등 했어도 7월로 가면 이 작품 하고 싶다고 똑같은 결정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박민영씨 눈빛에서 비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욕심을 강하게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개과천선>을 하고 2년 공백이 끝나고 나서 결정을 한 건데, 제가 평소에 연기의 고수라고 생각했던 선배님들이 나오세요. 그 분들을 어깨 너머에서라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저는 그 작품에 참여했어요. 제가 작품에서 돋보여야겠다. 도드라져야겠다 이런 마음 전혀 없이 그냥 현장에서 저는 턱 괴고 봤어요. 어린 친구가 저 혼자였고. 여배우도 적었고 거의 저 혼자였어요. 선배님들 사이에서 본 거예요, 그냥 탁구 게임 보듯이. 김상중 선배님, 김명민 선배님, 오정세 선배님, 정말 연기 잘하는 분들 오가는 걸 저는 그냥 본 거예요.

사실 저는 대사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헤헤. 어깨 너머로 보면서 이렇게 연기를 잘 하시는 분들도 캐릭터 접근을 이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하시는구나, 대사 연구를 이렇게까지 하시는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 나태했던 것 같다는 자기 반성과 함께 또 보고 배우는 게 있으니까 아, 나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 연기 갈증이 그렇게 배우면서 생긴거예요. <힐러>라는 작품을 만나게 될 쯤이 그런 갈증이 커져있을 때였고, <개과천선>이 그런 갈증을 주고 가는 길을 제시해줬다면, <힐러>는 이제는 앞으로 좀 전진할 수 있는 용기와 힘, 에너지를 얻은 작품 같아요.

-박민영씨가 가진 배우로서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강점이요... 음...... 어쨌든 배우는 눈으로 많은 걸 전달해야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눈이 좀 맑다고 하는 칭찬을 들었는데... 평소에도 그냥 눈으로 말하는 걸 좋아해요. 항상 연기를 할 때 상대의 눈을 보고 연기하느라고 가끔 눈을 한없이 치켜들때도 있고... 너무 큰 분들하고 할 때는 코, 인중 이런 쪽을 봐야지 잘 나오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걸 못하겠는 거예요. 눈을 보고 연기를 해야지 이게 말이 나오지, 아니면 사시 되기도 하고... 눈의 전달이 좀 할 수 있는 좀 맑은... 헤헤. 이런 말 되게 쑥스럽네, 헤헤. 자꾸 커피를 먹게 되는데... 하하. 약간 건강해보인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마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건강해보인대요. 유약해보인다거나 그런 것보다 제가 사람을 밝게 해주는 건강함이 있대요. 하하하하. 사실 제가 좀 에너지가 넘치긴 해요. 흥도 넘치고. 그런 거가 배우로서 잘 장점으로 가져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다음엔 케미? 케미라고 하잖아요. 어울림. 좋은 한국말로. 헤헤. 어울림의 화학작용? 하하하하. 그게 체구가 좀 작고, 뼈대가 좀 가늘고 하니까 남자 배우들은 더 커보이고 남자답게 보이게끔 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나머지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데 잘 메꿔가야죠. 하하. 칭찬은 참... 헤헤.

-2년간 쉬셔가지고 또 공백이 있을까봐 팬들이 걱정을 좀 하기도 하는데요.

그거는 이번엔 정말 걱정 붙들어매셔도 되는데. 하하. 저는 이번엔 오히려 휴가가 굉장히 짧구요. 해외작품 다녀온 다음에 하반기에... 저랑 회사랑 의견이 다를 수도 있어요. 헤헤. 저는 되게 어려운 역할 한번 도전하는 게 꿈이예요. 지금이 연기를 시작한 이래도 연기가 제일 재밌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자체도 일 같이 안 느껴지고, 제가 커피 되게 좋아하는데 눈도 왔고 기분이 되게 좋은데... 하하하하. 불쌍해보이나요? 제가 오랜만에 카페 나오고 이런 게 에너지가 소진이 안돼요. 지금 일이 재밌고, 이때 해야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또 감정이 솔직한 편이라 재미가 없으면 정말 안하거든요. 쉬기도 하고. 그래놓고 반성하고 다시 하고. 헤헤. 단순해서 지금 너무 재밌어서 아마 연기에 끊임없이 맨몸으로 부딪힐 것 같아요. 작품 성패 상관없이 내가 만약 닥치더라도, 실패하고 미끄러지더라도, 도전하는 한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쉴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차기작품은요?

중국 가는데요. 제가 사실 겁이 많았어요. 또 이상한 선입견이 있는 거예요. 한국배우가 한국작품을 해야지, 왜 중국엘 가나 헀는데... 저는 중국 활동 한번도 해본 적 없거든요. 이상한 고집이 있었어요. 그런데 똑같이 저를 좋아해주고 열광적으로 해주시는데 제가 이런 생각 갖고 있다는 거 자체가 편협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또한 나의 편협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결정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것도 한번 깨고 나와보자, 이것도 도전인 거죠. 제가 중국말이 내 말도 아닌데 싫어, 어떻게 하냐 이럤어요.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 의사소통에 열심히 노력해보면서 좋은 작품으로 최대한 만들어서 좋은 작품으로 하나 남기고...

와서 또 다시 연기갈증이 생길테니 하반기는 어려운 걸로 도전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아, 왜 우리 드라마는 여자는 어려운 역이 많지는 않아요. 여자 주인공 역할이 다양성이 있진 않아요. 영화도 그렇고. 뭔가 도전의식을 막 불러일으킬만한 다양성이 많지않은 그런 현실이 있어서 열심히 찾아봐야죠. 그리고 그런 캐릭터에 먼저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면 이런 중국 작품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더라구요. 그런 것도 작용을 했습니다.

<힐러>에서는 ‘해커줌’이라는 역할이 있었는데 김미경 선배님이 <성균관스캔들>에서는 되게 지고지순 엄마 역할로 나왔는데, 이번엔 엄마가 아닌 되게 개성과 자기 주체성이 확실한 해커줌 역할을 만나니까 너무 빛나는 거예요. 그런 캐릭터를 저도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좀 흔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데 어렵고, 그런데 해놓고 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저한테도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고... 그런 다양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 다중인격이 있었어야 되는데. 하하하하. (<킬미, 힐미> 봤어요?) 네, 저 좋아해요. 저 요나(<킬미, 힐미>에 나오는 다중인격 중 하나) 좋아해요. 헤헤헤헤. 저도 가끔 제 안에 다중이를 발견하니까. 하하하하.

-박민영씨 안에 다중이가 있다고요?

저희는 진짜 다중이여야 돼요. 왜냐하면 연기할 때 모습과 아닐 때 모습은 저는 간극이 굉장히 커요. 갭이 커요. 저는 일할 때 완벽주의적 성향이 생겼어요. 후천적으로. 하다 보니까. 어쨌거나 내 이름 걸고 하는 직업이라는 걸 인식을 하게 되니까. 예민해지게 되고 완벽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연기에 있어서는 저조차 깜짝 놀랄만큼 몰입하게 되고, 캐릭터에 빙의할 때도 있고... 영신이란 캐릭터를 맡으면서는 그렇게 춤을 추고 다녔고... 정말 사람들이 그만 추라고 할 정도로... 하하. 원래 제 모습으로 돌아오면 완벽은 무슨 완벽인가요. 저는 허당일 뿐이거든요. 너무 게으르고...

드라마 끝나고 나서 그저께 하루 딱 늦잠 잘 시간이 있었는데, 정말 침대 밖으로 열걸음 걸어나왔어요. 밥먹으러. 그리고는 제 방에서 나오지도 않아요. 침대에 누워있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런 갭이 커요. 그리고 저 기계치거든요. 그리고 집에서 티비도 안봐요. 약간 그런 갭들이 존재하니까 다중이라고 생각이 드는 거죠. 헤헤. 전 정말 집순이예요. 근데 집에서 할 게 정말 많거든요. 집에 있는데 심심하게 있지 않아요. 제가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콩도 제가 사다가 꽃도 좋아해서 고속터미널 꽃시장도 가요. 요리 좋아하고. 베이킹 재료도 사다놨어요. 드라마 끝나고 심심하면 하려고. 베이킹도 하고. 그리고 강아지랑도 놀아줘야 되고. 책도 읽어야 되고. 영화도 봐야 되고. 얼마 전에 영화 <나를 찾아줘>를 틀어놨다가 잤어요. 그날 보니까 18시간을 잤더라구요. 하하하하. (영화 재밌게 봤다는 얘길 하는 줄 알았어요) 헤헤. 다음날 이어보기로 봤는데, 저는 보고나서 찜찜한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힐러>는 참 개운해요. 하하하하.

-유지태씨, 지창욱씨와 케미는 어땠어요?

유지태 선배님은 제 결혼관을 바꿔놓셨어요. 사랑 전도사 같은 느낌? 헤헤. 첨 뵀을 때부터 눈에서 하트가 나오시면서 그 꿀 바른 목소리로 “민영씨 만나서 너무 반가워 영광이에요.” 저는 처음에 그게 혹시 처음만 이러실까 했는데 마지막까지 몇달동안 변함없이 제가 피곤하면 드립커피를 내려주시고 제가 밥을 안 먹고 일하는 것 같으면 간식을 넣어주시고. 제가 연말에 상 받으면 축하 카드를 써서 선물을 주시고... 핸드폰 메인사진은 항상 아기와 김효진 선배님 보시고... 그 캐릭터 문호 삼촌이 영신이를 참 아끼는 캐릭터인데, 처음부터 아빠 미소를 짓고 봐주시거예요. 제가 사실 서른이라 귀여움을 받을 나이는 아닌데, 항상 귀엽다고 말씀해주시니까 전 참 신났죠. 어떻게 하면 더 귀여움 받을 수 있지? 항상 귀여워해주고 예뻐해주셨어요. 끝나고 나서 유지태 선배님은 참 큰 사람 같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렇게 먼저 다가와주시고. 손 내밀어 주시고, 마지막까지 챙겨주시고, 다독거려 주시고... 제가 놀랐던 게 <힐러> 끝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베스트씬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저 역시도 제 씬을 꼽았거든요. 그런데 정후와 영신 눈꽃스신을 꼽으시더라구요. 그게 배우로서 되게 멋진 거예요. 아, 나도 딴 사람 뽑을 걸. 하하. 그게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지창욱씨는 낯을 되게 가려요. 저도 사실은 낯을 가리는 성격이예요. 촬영 초반까지만 해도 식사하셨어요. 90도 인사할 정도로... 봉수는 초반에 촬영 분량이 많았는데, 제가 죄송한데 기자분들에 대해 알아봤는데 후배 신참은 그냥 ‘이 새끼’ 래요. 좀 많이 끌고다니고 함부로 해야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친해지려는 노력을 시작한 거예요. 그랬더니 진면모를 알게 되는데 이 분이 생각보다 되게 유머러스 하더라구요. 밝고 명랑하고 유쾌하고 그런 좋은 에너지가 많아서 제가 지너자이저라고.별명을 지어주고 유지태 선배님은 유중심이라고 지어주고. 중심을 잘 잡으셔서. 그런 에너지가 연기하기 멋진 파트너였던 것 같아요.

 

박민영씨는 정말 '헤헤'하고 웃습니다

 

모든 사진은 CJ E&M 제공

이렇게 말 많은 내한공연은 정말 첨 봤습니다.

바로 지난 4일 캐나다 출신 팝재즈 보컬리스트 마이클 부블레의 내한공연 말입니다. 부블레씨의 첫 내한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았죠. 페이스북에 공짜표 얻어서 간다고 자랑했더니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리뷰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51126121&code=960802

아무튼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이렇게 말 많은 외국 가수, 진짜 첨 봤습니다. 사실 대부분은 첫 인사말로 “안녕하쎄요” “싸랑해요” 정도의 립서비스만 하는데 말이죠. 와... 진짜 부블레씨는 곡 중간중간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더군요.

사실 영어가 짧아 잘 알아듣지도 못한 것도 꽤 있습니다. 관심 있는 아티스트가 한국에 오면 돈을 쳐발라서라도 가곤 했는데, 이렇게 의사소통의 한계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영어가 짧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부블레씨가 말을 많이 했기 때문... 이겠죠.

아무튼 첫 마디부터 아주 온갖 설레발을 치더군요.

“이 공연을 여러분이 마치 첫 데이트처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로맨틱하게,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어쩌면 짧은 입맞춤을 나눌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꽥, 꽥 여성 팬들의 비명을 자아냅니다. 정말이지, 부블레씨는 선수 같았습니다. 무슨 소개팅이라도 나온양 열심히 들었다, 놨다 하더군요. 깔끔하게 노래 한 곡하고, 유쾌한 입담 털어놓고. 또 시원하게 노래 한 곡하고, 달콤한 립서비스 쏟아내고.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말을 천천히 하겠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대신 제가 얼마나 재밌고, 또 제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설명해주세요.”

뻔뻔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나올 때 불기둥 보셨나요? 정말 비싼 장치입니다. 솔직히 이제 남은 시간 공연은 기대하지 마세요. 불기둥에 돈을 다 써서 이제 그냥 마이크만 갖고 해야합니다.”

이쯤되면 귀엽네요.

그런가 하면 첫 데이트 자리에서 부블레씨는 희롱도 합니다.

“오늘 밤 공연이 끝나고 데이트를 하시는 분들은 ‘더티 섹스’(dirty sex)를 나누길 바랍니다.”

“솔로로 온 분들은 옆에 있는 커플과 함께 ‘쓰리썸’(threesome)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정도면 수준급 섹드립이군요.

그동안 제가 못 알아들어서 그런가, 이런 섹드립까지 치는 내한공연 가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힙합하는 흑형들이 와서 껄렁껄렁하게 “마더퍼킹 어쩌구 저쩌구, 불쉿 어쩌구 저쩌구”하는 정도는 봤지만 말이죠. 부블레씨는 참으로 능청스럽더군요.

부블레씨의 이번 월드투어는 5번째로 상하이, 마닐라, 홍콩,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를 거쳐 이번에 서울로 왔습니다. 다음 투어 장소는 도쿄. 부블레씨가 도쿄 가기 전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여러분처럼 열정적인 관객을 만나게 돼 기쁩니다. 다음 투어는 도쿄인데요. 일본인들도 여러분처럼 열정적으로 저를 반겨줍니다. 아주 조,용,하,게.”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사뭇 다른 공연 관람 풍경을 들면서 한국 팬들을 살짝 띄워준 것이죠.

그러고보면 부블레씨는 일본에는 다녀온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많은 외국 가수들이 일본만 찍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가곤 하죠. 부블레씨의 저 말을 듣고는 문득 그런 게 좀 아쉬워졌습니다.

아무튼 부블레씨는 참 말 많은 선수입니다. 그를 나훈아에 빗댄 분도 있더라구요. 나훈아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비슷할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부블레씨의 드립이 정해진 각본일지도 모릅니다. 하긴 인스타그램에서 빅뱅 태양의 ‘눈, 코, 입’을 들었다며 즉석에서 들려주는 그의 능숙한 서비스 장인 정신을 보면 그렇게 시니컬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달리 보면 부블레씨는 나름 한국 팬들을 사로잡기 위한 준비를 해온 것이죠. 이렇게 섬세하게 준비해서 방한하는 아티스트도 없을 겁니다.

노래를 하면서도 눈 여겨본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 함께 춤을 추거나, 직접 내려가서 ‘셀카’를 찍고 안아주는 정성이면 첫 데이트에서 걍 함 갈 데까지 가보는 것(?)도 어떨까 싶네요. 뻔한 전략이라는 게 보여도 한번쯤 넘어가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드립도 참 볼만한 공연이었습니다. 이번에 못 가신 분들은 부블레씨가 “한국에 꼭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니 믿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사진은 CJ E&M 제공

씨 유 어게인, 부블레.

 

물론 그때도 티켓값은 드럽게 비싸겠죠.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집들은 마치 사람 대신 벌을 받는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를 언급하며

역사는 공정하지 않다.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권력자들 혹은 승리자들에 의해 여러 번 고쳐지고, 심지어는 구체적인 의도 하에 아예 각색되거나 삭제되어온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누군가의 입맛대로 편집된, 그 자체로는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영국의 건축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Rovert Bevan의 <집단기억의 파괴>는 그런 역사 왜곡∙파괴행위가 건축 등 구조물의 훼손∙파괴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적으로 분류되는 국가나 민족, 혹은 인종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 군사적인 목적과 관계없는 다분히 고의적인 물리적 파괴행위가 자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건축에 가해진 탄압"에 대한 보고서다.

건축이 탄압의 대상이 된다고? 이상하게 들린다. 베번은 건물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어떻게 건축되고 평가 받고 파괴되느냐에 따라 정치화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벽돌과 돌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변화무쌍해진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두고 특별히 애틋한 감정을 느끼거나 특정한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태우거나 망가뜨린다면, 우리는 슬픔을 느끼거나 때론 분노할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탄압받은' 건축의 예시는 스케일scale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의 망각, 기록의 상실을 통한 역사적 존재(국가, 민족, 인종, 계급 등)의 근거 자체를 부정함에 있다.

돌덩이 따위가 알리 없는 이 목적을 위해 정말 한참을, 그리고 많이도 부수고 부수어 왔다ㅡ프랑스 혁명시기의 공화주의자들은 귀족의 저택과 바스티유 감옥을, 히틀러의 나치스는 유대인의 가옥과 시너고그를,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수천 개 수도원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알 카에다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WTC)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지적인 예들까지 이르면 실로 무수하다. 그리고 그만큼 무수히 사라져왔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그리고 그 강점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우리도 그런 과정을 주고 받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는 시민혁명군

 

탈레반이 '우상 숭배'를 이유로 파괴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저자는 '파괴'에 관해 실컷 늘어놓은 후, '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재건이나 복구 행위 역시 역사의 위조에 일조할 수 있으니(마치 파괴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이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건이나 복구가 따른다고 해서 역사가 복원됐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 정말, 역사는 그 자체로 온전히 사실일 수 없고 온전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믿을만한 역사의 진본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답답하다. 로버트 베번은 그나마 겨우 건축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심시티나 한판 할까

'건축과 졸업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0) 2015.01.30
약하지만 깊은 건축  (1) 2015.01.29
엄마야 누나야 작은 집 살자?  (2) 2014.04.16
DDP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4) 2014.03.27

약하지만 깊은 건축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Kuma Kengo의 작품을 접하면 그 입면을 구성하는 패턴의 독특함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나처럼 무심한 건축학도라면 “일본 건축가답네"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말겠지만. 그런 '스타일리쉬'한 패턴을 보이는 건축이 오모테산도를 걷다보면 정말이지, 자갈마냥 발에 채인다. 켄고상의 <약한 건축>은 이렇게 그냥 훑어보기 십상인 입면 패턴이 지닌 불순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한다. 켄고상에게는 이 이데올로기의 뿌리가 생각 외로 깊다. 그의 건축도 표면에 그치지 않고 깊이를 갖는다.

이 책은 2004년 출간됐다. 당시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5년'쯤을 맞을 때다. 쿠마가 이 책에서 "건축은 세 가지 숙명-크기, 자원 낭비, 긴 수명-때문에 분명 미움을 받아 당연하다"고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우리도 부동산 경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던 10여년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건축에 대한 거부감이 보다 확산됐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어디까지나 낭만적 첫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켄고상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쿠마는 느닷없이 잘 알려진 경제학자 케인스를 소환한다. 미국의 대공황을 건축·토목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 케인스다. 쿠마는 사실상 "케인스의 정책에는 시간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며 "단기적인 처방을 거듭하는 일이 케인스 정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쿠마는 건축 정책을 활용한 경기 부양을 꿈꾸는 케인스를 비판함으로써 "이 시대 건축에 필요한 것은 접합"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접합'의 필요성은 시간·공간·물질, 어느 것도 예외는 없다. 짓고 부수고 또 짓고, 그렇게 지은 건축은 도도한 랜드마크로 남으며, 이 랜드마크의 물성은 하나 같이 고고한 콘크리트 같은 것. 쿠마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가만 보니, 그의 작품 상당수에서 목재로 조립한 듯한 패턴이 눈에 띈다. 우리가 쉽게 '패턴'이라 부른 것들은 켄고상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접합'의 외부적 표현이다. 이 표현이 켄고상 건축의 표면과 깊이,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쿠마는 명확함을 주장했던 모든 유행을 공격한다. 필로티에 상자를 얹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기단에 상자를 얹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 Rohe가 줄곧 도마에 오른다. 반면 이들에게 사실상 패배한 데스타일De Stijl 건축의 복합성에는 아쉬움을 표한다. 거대 공공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클로저(Enclosure, 폐쇄성) 현상은 금융 시스템 내의 파생상품만큼이나 도시에 해가 되는 어떤 것이다. 온갖 왜곡을 일삼으며 결과 외엔 어떤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 건축 사진도 경계 대상이다. 켄고상은 앞서 말했듯 시간·공간·물질을 넘나드는 '접합'의 이념으로 중무장했다.

<약한 건축>. 이 책에 '약한 건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은 없다. 다만 쿠마가 비판하는 대상들을 '강한 건축'으로 놓고 보면 그 개념을 미뤄 짐작함이 가능하다. 쿠마의 대표작인 '대나무주택'(Great Bamboo Wall) 등 목재로 이뤄진 작은 패턴 단위를 접합하는 식의 작업을 보면, 그는 확실히 '약한 건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켄고상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리라는 역설을 믿는 듯하다. 그가 추구하는 건 약한 건축이지, 얕은 건축은 아니다. 그의 사상도, 공간도 깊다.

쿠마상이 맞나요, 켄고상이 맞나요

'건축과 졸업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0) 2015.01.30
약하지만 깊은 건축  (1) 2015.01.29
엄마야 누나야 작은 집 살자?  (2) 2014.04.16
DDP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4) 2014.03.27

총, 균, 색(色)

 

왜 인간은 아무 때나 섹스를 하는 걸까?

 

“아, 왜긴 왜여! 좋으니까 하는 거지!”

 

매해 서울대 도서관 대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책,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섹스’를 논한다. (물론 그도 하고 살겠지) 제목은 <섹스의 진화>. 서점에서 눈에 띄면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단어가 제목을 장식한다. 이 책에서 다이아몬드가 던지는 질문들은 대략 이런 식이다.

 

왜 섹스는 즐거운가? (즐겁지 않을 때도 있긴 있을 거다)
왜 인간은 남 몰래 섹스를 할까? (그럼 공개적으로 하란 말인가…)
왜 인간 여성은 폐경을 맞이할까? (이건 좀 질문 같은 질문이군)
왜 인간 남성의 성기는 큰 것일까? (그래? 고릴라군, 보고 있나)

 

 

정말 어려워 보이는 ‘폐경’ 얘기만 빼고 나머지 3가지 질문으로 비과학적인 ‘썰’을 풀라고 하면 밤새 떠들 수 있겠지만(이른바 ‘음담패설'), 우리의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진지하다. 왜냐면, 위의 질문이 담은 성적 습성들은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독특한’ 성적 습성이 커다란 뇌나 직립 보행 만큼이나 인간의 진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아… 정말 학자들은 참… 간단한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이 책의 머리말을 읽는 순간 책을 덮어야 했음을 깨닫는다.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성행위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새로운 체위를 배울 수도 없고…” 휴, 그래도 다이아몬드께서 쓰셨으니 꾹 참고 읽어봤다.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성생활을 탐구하기에 앞서 우리의 ‘종 차별적 시선’을 제거하라고 한다. 우리 인간은 보통 연애 혹은 결혼을 통해 한 파트너와 길게는 수십년 동안 잠자리를 갖는 것을 정상으로 취급하지 않나. 하지만 호랑이와 오랑우탄의 성생활은 오로지 ‘원 나이트 스탠드(One Night Stand)’로 점철돼 있다는 사실.

 

“오랑우탄은 멍청하니까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이해 못 하듯, 우리 인간의 성생활도 호랑이나 오랑우탄의 세계에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물개가 펭귄을 강간한다는 동물의 성생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생활도 규명 대상이다. 대체 우리는 왜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였나?(번역: 대체 우리는 왜 한 사람하고만 하고 살게 됐나?)

 

종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보니, 갑자기 비비(원숭이의 한 종류)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인간 신혼부부를 보며 비웃는다. 이 신혼부부는 배란기를 정확히 알고 의식을 치르기 위해 준비 중인데 말이다. 비비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들의 암컷의 성기 주변의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선홍색으로 변하는 등 징조로 배란기를 쉽게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동물들이 이처럼 배란기를 쉽게 알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들은 딱 그즈음만 섹스를 한다. 반면 배란기를 모르는 인간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한다. 전지적 비비 시점으로 보면 인간들은 얼마나 낭비적이고 피곤한 종인가.

 

혹은 너무 밝히는 종은 아닌가

 

비비 따위에게 무시 당하니 기분도 나쁘고, 한번도 생각 해보지 않은 주제를 갑자기 생각하려니 머리도 아프다. 왜 인간이 배란기가 아닌 때에도 섹스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이 있다.

 

아무튼 다이아몬드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먼 조상은 지금과 달리 상대를 바꾸어 가며, 다만 오직 배란이 이뤄지는 시기에만 섹스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종족 보전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 일부일처제적 관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섹스를 하도록 바뀌었다. (중간의 복잡한 연결고리는 책을 직접 읽으소서…)

 

하지만 이 책에서 제기된 인간의 성적 습성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 책의 끝에서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성적 습성을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음경이 가진 진화론적 문제와 같다’고 실토한다. 귀가 '번쩍' 하는 이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 우리의 음경은,

친족인 유인원에 비해 3~4배 가량 과장된 길이의 그것. 남자는 그토록 집착한다지만 여자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것. 섹스를 할 때도 굳이 길이가 이 정도일 이유는 없는 그것. 지난 700만~900만년 동안 살았던 우리 인간 조상들의 추정되는 그것의 길이보다 무려 4배나 늘어났다는 그것.

 

이렇게 진화론적 의문으로 가득한 그것이 바로 과연 인간의 성적 습성에 대한 탐구가 처한 맥락과 같다는 말이다. 음, 살다살다 이런 명쾌한 비유를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실상은 매일 밤 방바닥만 긁고 있는 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그런 행운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마가 두 장 들어있는 너구리 라면이라니. 오동통 면을 후루룩한 다음 빨간 국물을 들이키기 전 집어먹곤 하는 그 다시마가 두 장이라는 건 꽤 기발한 상상이었다. 물론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만 그래도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을 먹었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말이 안 된다고 봤다. 술자리 농담으론 꽤 괜찮지만, 대기업 농심을 바보로 아나......

하지만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은 충분히 가능했다. 왜냐면, 사정은 대략 이러하다. 너구리 라면 공장 컨베이어벨트가 달린다. 동그란 모양의 꼬불꼬불 면발 덩어리가 그 위에 줄을 선다. 벨트 끝에서 이 덩어리는 떨어져 새빨간 포장지 속으로 쏙 들어가겠지. 그 전에 아마 어느 지점에선가 스프 한 봉, 다시마 한 장이 면발 위로 툭 떨어져 나란히 포장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흰 머릿수건을 쓴 노동자가 다시마를 일일이 손으로 쪼개 넣는다. 이런, 믿기 힘든 전근대적인 광경.

‘너구리 한 봉, 다시마 한 장’의 믿음은 현대 자본주의 대량생산 체제를 너무 과신한 데서 비롯됐다. 기계화 역시 흰 머릿수건 아줌마(그냥 떠오르는 성차별적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 쓴다)를 대체할 수 없다고 농심은 설명한다. 이 아줌마의 실수가 ‘너구리 한 봉, 다시마 두 장’을 만들어낸다. 이건 불량품이다. 다만 불량품인데, 소비자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은 불량품이다. 어떤 소비자는 이 불량품을 '로또'라 부른다. 이 불량품의 피해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대기업 농심이 손해를 본다. 그 조그만 다시마 한 장 가격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음, 그리고보면 이 기분 좋은 불량품을 계속, 또 자주 보기 위해선 ‘노동의 종말’ 따윈 없어야 할 텐데. 허나 언젠가 리프킨의 예언은 실행될테고, 우리의 다시마엔 보다 평등한 날이 오겠지. ‘너구리 한 봉, 다시마 두 장’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게 진보라면, 나는 진보를 거부할 것인가. 겨우 다시마 두 장 따위에 '사람 사는 세상' 같은 구호가 곁들여 있었단 말인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라는 진부한 말이 하고 싶어진다. 아직 그런 공장이 있다.

...... 나의 비좁은 자취방 찬장엔 너구리 네 마리. 오늘따라 흰 머릿수건 아줌마가 손짓하네,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 아래는 한겨레출판 보도자료

 

이 책은 제지 공장부터 콘돔, 간장, 가방, 도자기, 엘피, 맥주, 그리고 김중혁 글 공장까지 호기심이 가득한 소설가 김중혁이 다양한 공장들을 다니면서 적어 내려간 시간과 기억, 속도와 사람에 대한, 느긋하고 수다스러운 글과 그림을 엮은 산문집이다. 15개의 공장 산책기와 더불어 노트 탐험기, 번뜩이는 가방 디자인 하기, 맥주 만취 시음기 등 작가의 재기 넘치는 토크(talk)와 인공 눈물, 글로벌 작가, 안경, 보온병, 시간표 등 사물을 담은 그림 등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만든 장소에 가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물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공장 산책기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소리와 도시, 기기 같은 사물들을 아날로그 감성과 함께 깊이 있게 만들어내는 그의 글들이 어떤 기계의 발명과 비슷해 보이기에 ‘발명가’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 김중혁. 그는 실제로 공장을 다니면서 공장에는 사람이 있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공장의 모습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잡할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소설가 김중혁은 고민한다. “왜 나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줄 수 없는 것일까. 외투를 만들거나 가방을 만들어서 직접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걸까.” 그는 소설가가 되고 난 후에도 그런 고민을 자주 했다. “내 소설은 어떤 ‘물건’이고, 어떤 ‘제품’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엄청난 소음으로 꽉 차 있고, 묘한 냄새가 떠다니며, 기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공장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 공장이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소음이 리드미컬하게 들리고, 화약약품이 향기롭게 느껴질 만큼.

지금은 나름대로 답이 생겨 소설이 어째서 필요한지, 글이 왜 중요한지도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연결되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의 부분을 생산하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중이라고.

 

 

제8호 태풍 '너구리' 북상, 농작물 피해 당부

 

언제나처럼 스크롤을 내리며 뉴스를 읽는데 '데자뷰'마냥 야릇한 느낌을 받은 날이 있었다. 여야가 세월호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두고 어떤 분을 불러야 하느니 마느니 싸우다가 헤어졌다는 뉴스를 볼 때였다. 순간 이게 오늘 나온 뉴스가 맞나 싶은 의문이 머리 속으로 스쳐 들어갔다. 그래서 네이버에 그 분의 이름과 '파행'이란 두 글자를 나란히 넣어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도 여야는 그 분의 증인 소환 문제를 두고 싸우다 결론 없이 헤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가 날짜만 달리하며 반복된다. 내가 뉴스(NEW-S)의 철자를 잘못 아는 건 아닐까.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다. 곳곳에서 "잊지 말자"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분명 누군가는 잊어가고 있거나 벌써 잊었기 때문이다. 종편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모 교수가 "세월호 얘기를 하면 시청률이 안 나온다. 국민들은 이제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 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해경을 해체하고, 유병언을 '죽은 채'로 잡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고, 재보선이 지나니 이제 정말 끝인가 싶다. 누군가 "세월호는 이제 끝났다. 잊어라"라고 말해도 반박하기가 괜히 엄한 분위기다.

시국이 이러니 이 책이 인기가 없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내릴 수 없는 배>. '세월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말하다'라며 세월호 참사 100일쯤 이미 나왔지만 언론을 별로 타지도 않았다. 세월호 이전의 '일상'이란 게 그닥 편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모두 소중한 그 '일상'을 찾아가려는 마당에 우석훈은 말한다.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더 위험해질 것이다" 그 놈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데 별안간 우석훈이 훼방을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개된 일련의 상황에 대한 우석훈의 해석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비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이 슬픔과 패닉에 빠져 있는 상황을 악용한 것"이라고 볼만한 일들이 이미 벌어졌거나,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그게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 방향이라는 거다. 이른바 '재난 자본주의'다. 우석훈이 예로 들었듯 제임스 딘이 나온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이란 대재난을 앞두고 곡물 가격 상승을 예측해 콩을 매점매석한 행위 따위를 말한다. 이걸 대한민국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군가 하고 있다는 거다.

일단 청와대. 정부가 총리실 산하로 국가안전처를 따로 신설하겠다고 한 발상을 우석훈은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면피용 시스템"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관리 시스템은 그야말로 '아노미'라고 말한다. 해경은 공중분해될 운명이고 새로 생긴 시스템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만 참사에 대한 법적·행정적 1차 책임을 절대로 지지 않게 됐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럼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배 사고니까, 이제 배는 좀 달라지려나? 우석훈은 절레절레. 일단 대통령도 앞으로 배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일절 안 했다는 거다. 이제 연안여객 사업이 어려워질 것은 불보듯 뻔한데 정부는 청해진해운 재산을 몰수해 보상금을 채워넣기 위한 '단 하나의 노력'만 할 뿐이다. 배의 수명을 연장해 주고 운항 관리를 느슨하게 해온 점이 세월호 참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데 정부는 말이 없다. 우석훈은 배가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내릴 수 없는 배'이다. 4월 16일 오전 8시52분, "살려주세요"란 단원고 학생의 신고를 목포해경과 전남소방본부가 '뺑뺑이' 돌렸듯,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 훌쩍 넘도록 국민의 안전에 대한 논의를 무한 뺑뺑이 돌리고 있다. 우린 반복되는 세월호 특별법 뉴스처럼 분명 또 데자뷰를 겪을 것이다. 그러고는 "대한민국이 원래 이렇지, 뭐"라며 똑같은 대사를 반복할 터. 내릴 수 없는 배를 탔다. 세월호를 탄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야 그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책은 얇다. 그래도 우석훈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부터 앞으로 진행될 사회적 논의의 주제들까지 정리를 잘한 것 같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소설 <모피아> 이후 자꾸 문학적인 욕심을 내는 우석훈의 노력 때문에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출퇴근길에서만이라도 이 책을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들었으면 좋겠다. 가슴이 자꾸 세월호를 잊으라고 하면 일단 머리로라도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정말 '잊히는 것'이 너무나 애달픈 이 영혼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제발 좀 내렸으면 하는 놈들은 절대 내리지 않는다

 

24.19㎡. 서른살이 돼 처음 자취를 시작한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넓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내 방보다 작다.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제거됐다. 책상, 책장, 옷걸이, 오디오 등등. 여기에 살면서부터는 철저한 ‘기능주의자’가 됐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한 크기면 충분하고, 식탁과 책상은 따로 마련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물의 제 의미를 찾아준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니, 식탁은 책상이 되기도 하면서 의미가 더 풍부해졌다. <작은 집을 권하다>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일본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스몰하우스’(Small House)에 대해 설명한다. 3평(약 10㎡) 정도의 작은 집에 거주하는 6명을 취재해 쓴 책이다. 물론 저자도 스몰하우스에 산다. 어느 산 깊숙이 버려진 듯한 아주 보잘 것 없는. 삽도로 실린 그의 집을 보면 누구나 ‘일본인들은 역시 참 괴짜군’이란 생각이 들 거다. 미국과 호주에 거주하는 그의 취재 대상들이 사는 집은 좀 다르다. 그것은 얼핏 보기엔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 생산한 주택처럼 엇비슷하게 깔끔하다. 주목할 것은 외관이 아니라 그 속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많은 이들이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는 작은 집을 갖자”고. 책에 등장하는 사례에는 주택 융자에 치이다가 결국 작은 집을 갖게 됐다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부류도 있다. 도시에서 그럴 듯한 전문직을 갖고 있지만, 본인 나름의 철학으로 인해 일부러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증언한다. 작은 집이 마음의 평안을 갖게 했노라고, 저자는 이를 ‘개인정신주의’라 부른다. 이어 스몰하우스 운동의 의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작은 집에 살다보면 결국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르 알렉산더의 작은 집. 모두가 전원일기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럴 것 같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땅에 그만큼 낭비는 줄어들 것이고, 지구는 좀 덜 아플 거다. 스몰하우스 운동의 의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물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그가 내린 답은 스몰하우스 운동의 실행자들보다 가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를 읽었을진대 세상은 ‘크기’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왜 그러냐고? 모르겠다. 아는 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스몰하우스 운동에 많은 한계와 난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는 거다.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싱글 혹은 2인 커플이다. 자녀가 있을 경우에 적절한 스몰하우스의 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작은 집이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았다. 스몰하우스의 도시적 모델은 언급되지 않는다. 과연 이 많은 인구가 너른 들판과 산골짜기 곳곳에 스몰하우스를 짓고 사는 것은 친환경적인가. 모두가 전원일기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심지어 황당하기까지 한다. “식량을 비축해두기보다는 신선한 재료를 마켓에서 사다 먹는 게 더 좋다. 언제 입을지 모를 옷가지들을 상자에 넣어 쌓아두기보다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 기분에 가장 잘 맞는 옷을 구입하는 게 낫다”, “식사는 얼마든 밖에서 할 수 있고, 세탁이 필요할 때는 동전 빨래방을 사용하면 된다. 공공도서관은 자기만의 거대한 서가가 된다” 등등. 그 고결한 ‘개인정신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하는 걸까.

 

니가 사는 그집

'건축과 졸업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0) 2015.01.30
약하지만 깊은 건축  (1) 2015.01.29
엄마야 누나야 작은 집 살자?  (2) 2014.04.16
DDP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4) 2014.03.27

 

2012년 5월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한 여성이 조준호 당시 통진당 대표(현 정의당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잡았다. 이 장면은 모자이크 없이 언론에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머리끄덩이녀’가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랐다. 이 여성을 비롯해 당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이들은 ‘NL’ 혹은 ‘종북’이라 불렸다. 그리고 한편에선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13년 8월 ‘RO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졌다. 다시 경기동부연합이 소환됐다. 현직 국회의원 등 사건의 몇몇 중심인물들이 다닌 한국외대 용인캠퍼스가 지목됐다. 본교가 아닌 지방분교를 다닌 이들의 자격지심 때문이라거나, 과거 용인의 격렬한 노동운동 영향 때문이라는 등 이야기가 떠돌았다.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를 추적한 책 <경기 동부>를 쓴 임미리는 조금 다르게 봤다. 용인이 아닌 성남에 주목했다. 내란음모 사건의 당사자 중 누구누구는 성남의 한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라는 점 등 대부분이 성남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저자는 1971년 8월 10일, 현재 성남의 뿌리인 ‘광주대단지’에서 벌어진 봉기를 불러낸다.

“배가 고파 산모가 아기를 삶아먹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의 도시 계획에 따라 도심 철거민 12만명이 이주해 자리 잡은 광주대단지는 이런 소문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수도·전기 등 기반시설 부족, 일자리 부족, 당연히 사람들 먹을 것도 부족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배를 채우던 곳. 봉기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그들은 “민생고 해결” 등 구호를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 대략 3만~6만명이 참가한 이 봉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초의 봉기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잘 모른다.

 

1971년 8월 10일 박정희 정권에서의 최초 봉기가 오늘날 성남의 전신인 광주대단지에서 일어났다

‘8·10 광주대단지 사건’의 역사적 소외는 곧 이 곳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소외였고, 나아가 이 지역 자체에 대한 소외였다. 이 도시에는 ‘폭도’ ‘빈곤’ ‘범죄’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집단이 기억을 만들 듯 기억이 집단을 만든다’(63쪽) 소외된 집단은 ‘소외’ 자체를 자신들의 기억으로 만들었고, 이 기억이 성남을 ‘저항의 도시’로 만들었다. 1980년대, 이 도시 출신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도 모임을 꾸렸다. 저항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운동권’ 일원으로서 저항을 표출했다. 그리고 다시 고향인 성남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왜 PD가 아니라 NL일까? 저자는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해 민족과 반민족 사이에 전선을 긋는 NL이 PD에 비해 집단기억에 귀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또 1980년 ‘5월 광주’에서 제기된 미국 책임론도 ‘주체사상파’가 성남 청년운동의 주류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역과 민족의 구체적인 집단기억을 받아들인 성남의 NL, 경기동부연합은 이렇게 형성됐다. 이후 그들은 지역 운동과 통일 운동을 거쳐 정당 활동에까지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공식화된 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비롯된 차별과 배제의 고착화된 집단기억을 가진 경기동부연합에겐 그 무엇보다 ‘진영 논리’가 중요했다. 또 5월 광주 대학살을 저지른 무지막지한 조국에 맞서기 위해 받아들인 북한의 주체사상이 이들의 비민주적 성격, 즉 ‘폐쇄적 패권주의’를 형성했다.

그 특성이 마침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에서 대중 앞에 공개됐다. 정치적 책임보다는 “당원들의 명예”를 강조한 것, “국민들의 눈높이를 당원의 눈높이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발언, 그리고 마침내 ‘머리끄덩이녀’로 대표되는 폭력 사태는 여전히 고착화된 집단기억에서 비롯된 ‘자기 보존 의식’과 ‘닥치고 단결’식의 비민주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바로 집단의 덫에 빠져버린 것이다’(233쪽) 경기동부연합은 그렇게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걸었다.

여론의 ‘종북몰이’가 거센 데다 내란음모 사건은 최종 판결이 나기 전에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경기동부연합은 여전히 단호하게 맞서는 중이다. '외부의 억압' 앞에서 이들의 굳건한 자기 보존 의식과 단결력은 지칠 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고립을 극복하고, 대부분 진보 세력과 시민사회 진영이 이들과 다시 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임미리는 이 단결력에서 번질 수도 있는 들불을 염려하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대중에게도 경기동부연합의 집단기억처럼 '머리끄덩이녀'의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거다. 더구나 언론에 공개된 ‘RO 녹취록’에서 드러난 이들의 ‘혁명적 정세 인식’은 그냥 한 개인의 생각이라며 넘어가긴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결연했다. 또 이들을 과도한 상상에 둘러싸인 집단으로 여기게끔 했다. 경기동부연합에 우선 절실한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대중과 한참 괴리된 현실 인식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들의 집단기억과의 투쟁이 아닐까. ‘광주대단지 키드’들은 오히려 그들만의 집단기억에 안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남종합시장에서 짝퉁 신발을 사던 때가 생각나네

어느 기업 대학 잔혹사

 

출입처라는 명목으로 중앙대학교를 드나든 지 반년 정도 됐다. 12월 중순쯤 처음 중앙대를 찾았을 때 본 것은 총장실이 있는 본관 2층에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 십여명이 자리를 펴고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전엔 과거 학교에서 징계 처분을 받았던 한 학생이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려 한 것을 학교 측이 막았다는 타 언론사의 보도를 봤다. 이런 단편들이 겹쳐 내겐 중앙대의 첫 인상이 됐다.

노영수란 사람을 알게 됐다. 워낙 유명하고 시끄러운(?) 일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일을 자주 벌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사실 없었다.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대학 한 두 곳의, 그리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니까. <기업가의 방문>은 노영수가 기업화된 대학 중 중앙대가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03학번인 노영수는 지난 2월에야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이 무지 늦었다. 등록금 때문에 저 멀리 남해에서 고기잡이배를 타야했을 정도로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이 다닌 독어독문학과의 교수였던 진중권이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인생이 한층 더 ‘꼬였다’. 그는 이 사태가 두산 재벌이 중앙대를 사실상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두산 혹은 중앙대는 ‘삐딱한’ 교수를 잘라내는 걸로 끝내지 않았다. 박용성 회장은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통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다. 교수들은 S, A, B, C급으로 평가되고, 수준에 따라 성과급을 받게 됐다. 회계학이 누구나 들어야 하는 교양 필수수업이 됐다. 재단을 비판한 학내 언론은 전량 수거당하는 ‘찌라시’ 신세가 됐다. 외부 경영컨설팅 업체가 껴들어 학과들의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냈다.

노영수는 두산이 중앙대의 배후엔 선 뒤 일어난 이런 움직임에 항의하다가 퇴학을 당했다. 다행이 법정이 노영수의 손을 들어줬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어선까지 탔던 그는 가까스로 고졸 신세를 면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은 노영수란 개인의 행적을 사찰하기도 했다. 두산 혹은 중앙대가 학생들을 향해 ‘자본주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맞은편에는 늘 그가 있었다.

졸업한 노영수는 지난달 다시 학교를 찾았다. 자신과 함께 시위를 벌여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 있는 한 4학년 학생의 성적장학금을 학교가 ‘박탈’한 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체 두산 혹은 중앙대가 써내려가는 ‘잔혹사’의 끝은 어디일까. 앞으로도 왠지 노영수를 자주 보게될 것 같다. 그가 이미 오래 전에 ‘방문’한 ‘기업가’에 대한 회고록을 이제 펴내도 전혀 늦은 감이 없다.

 

난 어쩐지 두산베어스엔 정이 안 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