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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2. 약하지만 깊은 건축 1
  3. 에픽하이 타블로와 펀치라인 진화론 3
  4.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 1
  5. 엄마야 누나야 작은 집 살자? 2
  6. '머리끄덩이'를 붙잡는 집단기억
  7. 어느 기업 대학 잔혹사
  8. 수렵채집으로 돌아가라?
  9. DDP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4

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집들은 마치 사람 대신 벌을 받는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를 언급하며

역사는 공정하지 않다.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권력자들 혹은 승리자들에 의해 여러 번 고쳐지고, 심지어는 구체적인 의도 하에 아예 각색되거나 삭제되어온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누군가의 입맛대로 편집된, 그 자체로는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영국의 건축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Rovert Bevan의 <집단기억의 파괴>는 그런 역사 왜곡∙파괴행위가 건축 등 구조물의 훼손∙파괴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적으로 분류되는 국가나 민족, 혹은 인종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 군사적인 목적과 관계없는 다분히 고의적인 물리적 파괴행위가 자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건축에 가해진 탄압"에 대한 보고서다.

건축이 탄압의 대상이 된다고? 이상하게 들린다. 베번은 건물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어떻게 건축되고 평가 받고 파괴되느냐에 따라 정치화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벽돌과 돌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변화무쌍해진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두고 특별히 애틋한 감정을 느끼거나 특정한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태우거나 망가뜨린다면, 우리는 슬픔을 느끼거나 때론 분노할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탄압받은' 건축의 예시는 스케일scale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의 망각, 기록의 상실을 통한 역사적 존재(국가, 민족, 인종, 계급 등)의 근거 자체를 부정함에 있다.

돌덩이 따위가 알리 없는 이 목적을 위해 정말 한참을, 그리고 많이도 부수고 부수어 왔다ㅡ프랑스 혁명시기의 공화주의자들은 귀족의 저택과 바스티유 감옥을, 히틀러의 나치스는 유대인의 가옥과 시너고그를,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수천 개 수도원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알 카에다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WTC)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지적인 예들까지 이르면 실로 무수하다. 그리고 그만큼 무수히 사라져왔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그리고 그 강점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우리도 그런 과정을 주고 받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는 시민혁명군

 

탈레반이 '우상 숭배'를 이유로 파괴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저자는 '파괴'에 관해 실컷 늘어놓은 후, '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재건이나 복구 행위 역시 역사의 위조에 일조할 수 있으니(마치 파괴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이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건이나 복구가 따른다고 해서 역사가 복원됐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 정말, 역사는 그 자체로 온전히 사실일 수 없고 온전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믿을만한 역사의 진본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답답하다. 로버트 베번은 그나마 겨우 건축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심시티나 한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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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지만 깊은 건축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Kuma Kengo의 작품을 접하면 그 입면을 구성하는 패턴의 독특함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나처럼 무심한 건축학도라면 “일본 건축가답네"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말겠지만. 그런 '스타일리쉬'한 패턴을 보이는 건축이 오모테산도를 걷다보면 정말이지, 자갈마냥 발에 채인다. 켄고상의 <약한 건축>은 이렇게 그냥 훑어보기 십상인 입면 패턴이 지닌 불순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한다. 켄고상에게는 이 이데올로기의 뿌리가 생각 외로 깊다. 그의 건축도 표면에 그치지 않고 깊이를 갖는다.

이 책은 2004년 출간됐다. 당시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5년'쯤을 맞을 때다. 쿠마가 이 책에서 "건축은 세 가지 숙명-크기, 자원 낭비, 긴 수명-때문에 분명 미움을 받아 당연하다"고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우리도 부동산 경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던 10여년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건축에 대한 거부감이 보다 확산됐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어디까지나 낭만적 첫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켄고상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쿠마는 느닷없이 잘 알려진 경제학자 케인스를 소환한다. 미국의 대공황을 건축·토목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 케인스다. 쿠마는 사실상 "케인스의 정책에는 시간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며 "단기적인 처방을 거듭하는 일이 케인스 정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쿠마는 건축 정책을 활용한 경기 부양을 꿈꾸는 케인스를 비판함으로써 "이 시대 건축에 필요한 것은 접합"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접합'의 필요성은 시간·공간·물질, 어느 것도 예외는 없다. 짓고 부수고 또 짓고, 그렇게 지은 건축은 도도한 랜드마크로 남으며, 이 랜드마크의 물성은 하나 같이 고고한 콘크리트 같은 것. 쿠마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가만 보니, 그의 작품 상당수에서 목재로 조립한 듯한 패턴이 눈에 띈다. 우리가 쉽게 '패턴'이라 부른 것들은 켄고상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접합'의 외부적 표현이다. 이 표현이 켄고상 건축의 표면과 깊이,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쿠마는 명확함을 주장했던 모든 유행을 공격한다. 필로티에 상자를 얹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기단에 상자를 얹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 Rohe가 줄곧 도마에 오른다. 반면 이들에게 사실상 패배한 데스타일De Stijl 건축의 복합성에는 아쉬움을 표한다. 거대 공공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클로저(Enclosure, 폐쇄성) 현상은 금융 시스템 내의 파생상품만큼이나 도시에 해가 되는 어떤 것이다. 온갖 왜곡을 일삼으며 결과 외엔 어떤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 건축 사진도 경계 대상이다. 켄고상은 앞서 말했듯 시간·공간·물질을 넘나드는 '접합'의 이념으로 중무장했다.

<약한 건축>. 이 책에 '약한 건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은 없다. 다만 쿠마가 비판하는 대상들을 '강한 건축'으로 놓고 보면 그 개념을 미뤄 짐작함이 가능하다. 쿠마의 대표작인 '대나무주택'(Great Bamboo Wall) 등 목재로 이뤄진 작은 패턴 단위를 접합하는 식의 작업을 보면, 그는 확실히 '약한 건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켄고상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리라는 역설을 믿는 듯하다. 그가 추구하는 건 약한 건축이지, 얕은 건축은 아니다. 그의 사상도, 공간도 깊다.

쿠마상이 맞나요, 켄고상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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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Epik의 타블로. 삶으로부터 맘으로. 내 맘으로부터 라임(Rhyme)으로. 직빵으로, 저 TOP으로. 입을 다물고, Listen Close, 피와 땀으로 만든 Flow smoke the dopest muthafuckas like hydro~” [Go!, Map Of The Human Soul, 에픽하이]

 

2003년, 고3 수험생이던 나는 수학 문제를 풀 땐 꼭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즐겨듣던 장르는 대부분 힙합이었고, 돌이켜보면 문제풀이보단 음악에 집중했던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의 래핑이 내 귀에 심하게 꽂혔다. “내 사주팔자조차 예측 못한 운명의 삑사리”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이 남자, 에픽하이의 타블로. 그 잘난 대학교를 나와 랩한다는, 좀 있어보이는 그 경력도 경력대로 끌렸고, 무엇보다 그의 가사에 확 끌렸다. 비유와 은유가 풍부하다는 점을 넘어 이건 뭔가 좀 확실히 재치가 있는 것이었다.

 

에픽하이 1집 [Map Of The Human Soul], 2003

 

이후 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에픽하이 이야기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다. 지금도 난 개인적으로 1집을 에픽하이 앨범 중 가장 명반으로 꼽는다. 그럼 이 에픽하이의 첫 앨범 [Map Of The Human Soul] 중 당시 인상 깊게 들었던 타블로의 가사들을 대략 살펴볼까.

 

실력이 식품이라면 나는 폭식가 [Go!]
“비싼 Ivy University 학비 투자 했던 부자 부모님의 돈은 그저 숫자. 차, 구찌, 프라다, 몇 백만원 값의 술잔. 타투(Tattoo)가 사치를 상징하면 넌 야쿠자 [하늘에게 물어봐]
삶이 한 문장이라면 우린 느낌표!” [Get High]

 

친절하게 밑줄을 함 그어봤다. '아, 이런 표현 좋네'라며 들었던 타블로의 가사엔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걸 굳이 공식으로 써본다면 ‘A가 b라면 C는 B’인데, 이런 걸 대구법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이러한 작사를 타블로가 국내에서 제일 처음 했다고 할 순 없겠으나 적어도 그가 이런 작사를 눈에 띄게 선보였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이 공식이 여러번 반복된 걸 보면 어쨌든 이 공식이 그 나름의 ‘펀치라인(Punch-line, 흔히 랩 가사 중 극적으로 귀에 꽂히는 한 문장을 이르는 말)’을 만드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의 이런 '대구법(?) 펀치라인'은 다음 앨범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레츠고우.

 

삶이란 갑 속에 이 순간은 돛대. Party like it‘s your birthday” [평화의 날, High Society]
“Blind 교과서. 사상의 학대. 보수주의가 강요하는 상상의 낙태. 허탈한 사회 먹이 연쇄 때문에 학교는 다니면서 인생은 자퇴. … 서랍에 적힐 태극기 너와 내겐 아직 해방기념일 없으니 여전히 이 젊은이 위험한 꿈을 꿔. 무법자 눈을 떠. 화염병이 불 붙어. 저 하늘에게 충성. 심판의 칼을 차리. 이 땅의 법이 출석부라면 나 결석하리 [Lesson2, High Society]

 

MBC 음악캠프 화면 캡쳐

 

캬... 이때만 해도 에픽하이는 참 '빨갰다'. 아마 [High Society] 앨범 때문에 타블로의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됐을 때 "타워팰리스 사는 미국적자가 왠 사회주의?"라는 비난도 나왔을 것이다. 암튼 이 흑역사는 걍 넘어가고 (ㅎㅎ) 이왕 펀치라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얘기를 살짝 더 해보자. 포털 검색을 해보면 이 펀치라인을 둘러싼 한 치열한 논쟁 구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타블로 펀치라인이 좋아요, 아니면 스윙스 펀치라인이 좋아요? 님들 생각은 어떠삼?” 대략 이런 식이다. 나도 1999년도 중2 였으면 이런 질문을 올렸을 것 같다.

 

그럼 이어서, TV쇼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로 더욱 주가를 올린 스윙스의 펀치라인, 어떤 게 있나 살펴볼까. 흠, 누가 더 나을까요.

 

“이제는 나를 디스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지. 너는 Tiger JK와 다르게 미래가 없지” [Punch Line 놀이, Upgrade]
“네가 한 대 때리면 난 네 대 갚아. Get it? 어린 놈아. 그게 너와 나의 세대 차이야. … 누가 날 알아. 물론 남 탓하기 없기. 근데 넌 요즘 권투계랑 똑같아. 알리 없지” [불도저, Double Single]
“길기만 한 경력을 축구공만한 크기의 양으로 축소해서 까. 싸커(soccer) 킥으로 차. 왜냐면 너네 새끼들은 다 골 때리니까” [심각하다] (그 유명한 Dead‘P 디스곡...)

 

Mnet 쇼미더머니 3 홈페이지 캡쳐

 

아하하하… 웃지 않을 수 없는 말장난이다. 가사를 잘 뜯어보면 2중 의미를 띌 수 있는 단어나 띄어쓰기를 변용해 이래저래 문장을 조립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가사=펀치라인이라고 부르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몇년 전부터 사전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타블로도 이런 식의 펀치라인을 많이 썼다.

 

“막가는 청춘은 보편 타당. 상관 없어 좋아, 적당한 데카당스. 사계절 바캉스 노래 불러보세. 투컷, 미쓰라, 타-블로(불노, 不老)의 샘” [뚜뚜루, High Society]
“내 목소리는 비트의 스키니진. fucker 딱 달라붙어. my technique lyrical kamasutra. 넌 겨울의 반팔티, ‘아마 추워’. 답답해, 니 가사는 마약중독자처럼 약해. 망해도 누굴 탓해. 씹어봤자 넌 그저 껌뿐이었어. 니 정신상태는 포장마차 싸움꿈, 병들었어” [Eight By Eight, Pieces Part One]
“너는 절대 못 껴. 입을 개처럼 풀어뒀어. 액자를 벽에 걸 때처럼 그럼 못 써” [Supreme 100, e]
“세상에 이끌려 가다간 첫 반만 채워진 답안지처럼 뒤틀려 다” [Shopaholic, e]

 

이걸 두고 누리꾼들께선 타블로가 낫다느니, 아니다, 스윙스가 낫다느니 몇년째 논쟁 중이다. 누가 나을까? 음...... 그런데 사실 이런 식의 펀치라인은 그냥 흥미거리에 그친다는 게 내 개인적 견해다. 가만 보면 가사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개를 자꾸 갸우뚱하게 된다. 가사를 보지 않고서는 무슨 뜻인지 캐치해내기 어려운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게 최근 몇년 간 랩퍼들이 구사한 펀치라인의 단점이기도 했다.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는 거. 그런데.

 

에픽하이의 따끈따끈한 새 앨범 [신발장]에서는 타블로가 뭔가 좀 다른… 한 발 더 나아간… 한 차원 더 높은… 아무튼 그런 펀치라인을 선사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아주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하면, 이번 펀치라인은 스윙스에게서 '펀치라인킹'이란 이름을 단박에 제거...할 걸...?

 

에픽하이 새 앨범 [신발장], 2014

"바늘 대신 이어폰 꼽고 연예인들도 줄 서게 하는 내 음악은 프로포폴. 10년간 니들 머리위에서 날뛰는 내 랩은 더 떠들어. 층간소음, 난 세대를 넘나들어” [부르즈 할리파]

 

음… 역시 스탠포드의 힘인가? 이건 뭔가 앞서 나온 단어를 유희적으로 조립한 가사들과 좀 다르다. 또 이 앨범에서 펀치라인이라 할 만한 건 이 문장 외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억지로 단어를 쪼개거나, 띄어쓰기를 비틀거나 하지 않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중의적인 표현이 담겨 있단 걸 쉽게 눈치챌 수가 있다. 정리하면, 이 앨범의 유일한 펀치라인 한 마디가 새로운 형식을 갖춘 데다 가사 전달까지 잘 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프로포폴’과 ‘층간소음’이란 키워드를 선택한 것. 이 역시 '우와'한 부분이다(이것도 펀치라인인 거 아시죠?). 연예인들이 줄줄이 프로포폴 투약으로 법정에 섰던 일과 층간소음으로 이웃끼리 칼부림까지 났던 요즘 세태를 떠올려보면, 이 가사 너머엔 꽤 엄청난 맥락이 있다. 나름의 풍자라면 풍자다. 그 맥락을 제거하고 이 가사를 알아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건 내가 사회부 기자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 에픽하이 1집에서 이런 류의 펀치라인 예고편이 제시된 바 있다. 서프라이즈. 이 앨범 마지막 보너스 트랙에서 좀 색다른 ‘기가 막힌’ 펀치라인이 나온다.

 

“기가 막혀, 러시아워(Rush Hour) 길 같이. Wack MC(실력 없는 래퍼들을 이르는 단어)들이 마구간보다 말이 많은지? 말 나왔으니 따지자면 니넨 정치와 GOD와 똑같이 ‘거짓말’로 돈 벌지” [Watch Ya Self, Map Of The Human Soul]

 

오우... ‘기가 막힌’ 걸 출근길 꽉 막힌 도로에 비유하고, Wack MC들의 ‘말(言)’은 갑자기 ‘말(馬)’이 된다. 사실 이건 앞서 살펴본 말장난스러운 펀치라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목할 건 다음 대목. GOD의 유명한 ‘거짓말’이란 노래는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같은 차원으로 넘겨 다차원의 비유를 형성한다. 확실히 이건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펀치라인의 조상님 유전자 격이다. 이 유전자가 몇 개의 앨범을 거쳐 이제 발현된 것일까? 펀치라인에도 밈(Meme)이 있단 말인가.

 

 

사실 나는 에픽하이의 이번 새 앨범이 그들의 첫 앨범의 감성으로 어느 정도 돌아갔다고 느낀다. 두 앨범 사이엔 10년의 격차가 있지만, 확실히 유전적으로 연결돼 있다. 증거? 없다. 다만 첫 앨범은 [막을 내리며]란 곡으로 끝났고, 새 앨범은 [막을 올리며]란 곡으로 시작한다는 것...^^ 물론 이런 단편적인 사실과 앞선 펀치라인 유전자 운운하는 이야기를 끼워맞추는 건 우습고 억지스럽지만…. 하지만 10년 동안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오면서 '시류를 너무 탄다'라는 비판도 들었던 에픽하이가 사실 뭔가 그들만의 색깔을 갖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앨범임엔 틀림없다.

 

10년 동안 어디선가 생존해왔던 외로운 이 유전자. 그를 위해 10년 뒤엔 같은 감성이지만 더 진화한 타블로의 펀치라인을 듣고 싶다. 이건 10년 넘은 타블로 팬심 유전자를 지녀서 하는 말이다.

 

"사치스러운 눈물로 동정을 산 후 그 빚은 다음 사람이 대신 갚는 그 Reason" [헤픈 엔딩]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그런 행운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마가 두 장 들어있는 너구리 라면이라니. 오동통 면을 후루룩한 다음 빨간 국물을 들이키기 전 집어먹곤 하는 그 다시마가 두 장이라는 건 꽤 기발한 상상이었다. 물론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만 그래도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을 먹었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말이 안 된다고 봤다. 술자리 농담으론 꽤 괜찮지만, 대기업 농심을 바보로 아나......

하지만 너구리 한 봉에 다시마 두 장은 충분히 가능했다. 왜냐면, 사정은 대략 이러하다. 너구리 라면 공장 컨베이어벨트가 달린다. 동그란 모양의 꼬불꼬불 면발 덩어리가 그 위에 줄을 선다. 벨트 끝에서 이 덩어리는 떨어져 새빨간 포장지 속으로 쏙 들어가겠지. 그 전에 아마 어느 지점에선가 스프 한 봉, 다시마 한 장이 면발 위로 툭 떨어져 나란히 포장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흰 머릿수건을 쓴 노동자가 다시마를 일일이 손으로 쪼개 넣는다. 이런, 믿기 힘든 전근대적인 광경.

‘너구리 한 봉, 다시마 한 장’의 믿음은 현대 자본주의 대량생산 체제를 너무 과신한 데서 비롯됐다. 기계화 역시 흰 머릿수건 아줌마(그냥 떠오르는 성차별적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 쓴다)를 대체할 수 없다고 농심은 설명한다. 이 아줌마의 실수가 ‘너구리 한 봉, 다시마 두 장’을 만들어낸다. 이건 불량품이다. 다만 불량품인데, 소비자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은 불량품이다. 어떤 소비자는 이 불량품을 '로또'라 부른다. 이 불량품의 피해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대기업 농심이 손해를 본다. 그 조그만 다시마 한 장 가격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음, 그리고보면 이 기분 좋은 불량품을 계속, 또 자주 보기 위해선 ‘노동의 종말’ 따윈 없어야 할 텐데. 허나 언젠가 리프킨의 예언은 실행될테고, 우리의 다시마엔 보다 평등한 날이 오겠지. ‘너구리 한 봉, 다시마 두 장’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게 진보라면, 나는 진보를 거부할 것인가. 겨우 다시마 두 장 따위에 '사람 사는 세상' 같은 구호가 곁들여 있었단 말인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라는 진부한 말이 하고 싶어진다. 아직 그런 공장이 있다.

...... 나의 비좁은 자취방 찬장엔 너구리 네 마리. 오늘따라 흰 머릿수건 아줌마가 손짓하네,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 아래는 한겨레출판 보도자료

 

이 책은 제지 공장부터 콘돔, 간장, 가방, 도자기, 엘피, 맥주, 그리고 김중혁 글 공장까지 호기심이 가득한 소설가 김중혁이 다양한 공장들을 다니면서 적어 내려간 시간과 기억, 속도와 사람에 대한, 느긋하고 수다스러운 글과 그림을 엮은 산문집이다. 15개의 공장 산책기와 더불어 노트 탐험기, 번뜩이는 가방 디자인 하기, 맥주 만취 시음기 등 작가의 재기 넘치는 토크(talk)와 인공 눈물, 글로벌 작가, 안경, 보온병, 시간표 등 사물을 담은 그림 등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훔쳐보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만든 장소에 가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물건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공장 산책기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소리와 도시, 기기 같은 사물들을 아날로그 감성과 함께 깊이 있게 만들어내는 그의 글들이 어떤 기계의 발명과 비슷해 보이기에 ‘발명가’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 김중혁. 그는 실제로 공장을 다니면서 공장에는 사람이 있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공장의 모습은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잡할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소설가 김중혁은 고민한다. “왜 나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줄 수 없는 것일까. 외투를 만들거나 가방을 만들어서 직접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걸까.” 그는 소설가가 되고 난 후에도 그런 고민을 자주 했다. “내 소설은 어떤 ‘물건’이고, 어떤 ‘제품’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엄청난 소음으로 꽉 차 있고, 묘한 냄새가 떠다니며, 기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공장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 공장이 부러웠던 때가 있었다. 소음이 리드미컬하게 들리고, 화약약품이 향기롭게 느껴질 만큼.

지금은 나름대로 답이 생겨 소설이 어째서 필요한지, 글이 왜 중요한지도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연결되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의 부분을 생산하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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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9㎡. 서른살이 돼 처음 자취를 시작한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넓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의 내 방보다 작다.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제거됐다. 책상, 책장, 옷걸이, 오디오 등등. 여기에 살면서부터는 철저한 ‘기능주의자’가 됐다. 의자는 사람이 앉기 위한 크기면 충분하고, 식탁과 책상은 따로 마련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물의 제 의미를 찾아준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니, 식탁은 책상이 되기도 하면서 의미가 더 풍부해졌다. <작은 집을 권하다>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일본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스몰하우스’(Small House)에 대해 설명한다. 3평(약 10㎡) 정도의 작은 집에 거주하는 6명을 취재해 쓴 책이다. 물론 저자도 스몰하우스에 산다. 어느 산 깊숙이 버려진 듯한 아주 보잘 것 없는. 삽도로 실린 그의 집을 보면 누구나 ‘일본인들은 역시 참 괴짜군’이란 생각이 들 거다. 미국과 호주에 거주하는 그의 취재 대상들이 사는 집은 좀 다르다. 그것은 얼핏 보기엔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 생산한 주택처럼 엇비슷하게 깔끔하다. 주목할 것은 외관이 아니라 그 속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많은 이들이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는 작은 집을 갖자”고. 책에 등장하는 사례에는 주택 융자에 치이다가 결국 작은 집을 갖게 됐다는 사람도 있다. 다른 부류도 있다. 도시에서 그럴 듯한 전문직을 갖고 있지만, 본인 나름의 철학으로 인해 일부러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증언한다. 작은 집이 마음의 평안을 갖게 했노라고, 저자는 이를 ‘개인정신주의’라 부른다. 이어 스몰하우스 운동의 의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작은 집에 살다보면 결국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르 알렉산더의 작은 집. 모두가 전원일기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럴 것 같다. 작은 집에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땅에 그만큼 낭비는 줄어들 것이고, 지구는 좀 덜 아플 거다. 스몰하우스 운동의 의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물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그가 내린 답은 스몰하우스 운동의 실행자들보다 가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를 읽었을진대 세상은 ‘크기’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왜 그러냐고? 모르겠다. 아는 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스몰하우스 운동에 많은 한계와 난관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는 거다.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싱글 혹은 2인 커플이다. 자녀가 있을 경우에 적절한 스몰하우스의 모델은 보이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작은 집이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았다. 스몰하우스의 도시적 모델은 언급되지 않는다. 과연 이 많은 인구가 너른 들판과 산골짜기 곳곳에 스몰하우스를 짓고 사는 것은 친환경적인가. 모두가 전원일기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심지어 황당하기까지 한다. “식량을 비축해두기보다는 신선한 재료를 마켓에서 사다 먹는 게 더 좋다. 언제 입을지 모를 옷가지들을 상자에 넣어 쌓아두기보다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 기분에 가장 잘 맞는 옷을 구입하는 게 낫다”, “식사는 얼마든 밖에서 할 수 있고, 세탁이 필요할 때는 동전 빨래방을 사용하면 된다. 공공도서관은 자기만의 거대한 서가가 된다” 등등. 그 고결한 ‘개인정신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하는 걸까.

 

니가 사는 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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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한 여성이 조준호 당시 통진당 대표(현 정의당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잡았다. 이 장면은 모자이크 없이 언론에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머리끄덩이녀’가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올랐다. 이 여성을 비롯해 당시 ‘폭력 사태’를 일으킨 이들은 ‘NL’ 혹은 ‘종북’이라 불렸다. 그리고 한편에선 ‘경기동부연합’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13년 8월 ‘RO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졌다. 다시 경기동부연합이 소환됐다. 현직 국회의원 등 사건의 몇몇 중심인물들이 다닌 한국외대 용인캠퍼스가 지목됐다. 본교가 아닌 지방분교를 다닌 이들의 자격지심 때문이라거나, 과거 용인의 격렬한 노동운동 영향 때문이라는 등 이야기가 떠돌았다.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를 추적한 책 <경기 동부>를 쓴 임미리는 조금 다르게 봤다. 용인이 아닌 성남에 주목했다. 내란음모 사건의 당사자 중 누구누구는 성남의 한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라는 점 등 대부분이 성남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저자는 1971년 8월 10일, 현재 성남의 뿌리인 ‘광주대단지’에서 벌어진 봉기를 불러낸다.

“배가 고파 산모가 아기를 삶아먹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의 도시 계획에 따라 도심 철거민 12만명이 이주해 자리 잡은 광주대단지는 이런 소문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수도·전기 등 기반시설 부족, 일자리 부족, 당연히 사람들 먹을 것도 부족해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배를 채우던 곳. 봉기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그들은 “민생고 해결” 등 구호를 내걸고 봉기를 일으켰다. 대략 3만~6만명이 참가한 이 봉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초의 봉기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잘 모른다.

 

1971년 8월 10일 박정희 정권에서의 최초 봉기가 오늘날 성남의 전신인 광주대단지에서 일어났다

‘8·10 광주대단지 사건’의 역사적 소외는 곧 이 곳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소외였고, 나아가 이 지역 자체에 대한 소외였다. 이 도시에는 ‘폭도’ ‘빈곤’ ‘범죄’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집단이 기억을 만들 듯 기억이 집단을 만든다’(63쪽) 소외된 집단은 ‘소외’ 자체를 자신들의 기억으로 만들었고, 이 기억이 성남을 ‘저항의 도시’로 만들었다. 1980년대, 이 도시 출신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도 모임을 꾸렸다. 저항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운동권’ 일원으로서 저항을 표출했다. 그리고 다시 고향인 성남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왜 PD가 아니라 NL일까? 저자는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해 민족과 반민족 사이에 전선을 긋는 NL이 PD에 비해 집단기억에 귀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또 1980년 ‘5월 광주’에서 제기된 미국 책임론도 ‘주체사상파’가 성남 청년운동의 주류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역과 민족의 구체적인 집단기억을 받아들인 성남의 NL, 경기동부연합은 이렇게 형성됐다. 이후 그들은 지역 운동과 통일 운동을 거쳐 정당 활동에까지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공식화된 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비롯된 차별과 배제의 고착화된 집단기억을 가진 경기동부연합에겐 그 무엇보다 ‘진영 논리’가 중요했다. 또 5월 광주 대학살을 저지른 무지막지한 조국에 맞서기 위해 받아들인 북한의 주체사상이 이들의 비민주적 성격, 즉 ‘폐쇄적 패권주의’를 형성했다.

그 특성이 마침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에서 대중 앞에 공개됐다. 정치적 책임보다는 “당원들의 명예”를 강조한 것, “국민들의 눈높이를 당원의 눈높이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발언, 그리고 마침내 ‘머리끄덩이녀’로 대표되는 폭력 사태는 여전히 고착화된 집단기억에서 비롯된 ‘자기 보존 의식’과 ‘닥치고 단결’식의 비민주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바로 집단의 덫에 빠져버린 것이다’(233쪽) 경기동부연합은 그렇게 스스로 고립의 길을 걸었다.

여론의 ‘종북몰이’가 거센 데다 내란음모 사건은 최종 판결이 나기 전에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경기동부연합은 여전히 단호하게 맞서는 중이다. '외부의 억압' 앞에서 이들의 굳건한 자기 보존 의식과 단결력은 지칠 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고립을 극복하고, 대부분 진보 세력과 시민사회 진영이 이들과 다시 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임미리는 이 단결력에서 번질 수도 있는 들불을 염려하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대중에게도 경기동부연합의 집단기억처럼 '머리끄덩이녀'의 기억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거다. 더구나 언론에 공개된 ‘RO 녹취록’에서 드러난 이들의 ‘혁명적 정세 인식’은 그냥 한 개인의 생각이라며 넘어가긴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결연했다. 또 이들을 과도한 상상에 둘러싸인 집단으로 여기게끔 했다. 경기동부연합에 우선 절실한 것은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대중과 한참 괴리된 현실 인식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들의 집단기억과의 투쟁이 아닐까. ‘광주대단지 키드’들은 오히려 그들만의 집단기억에 안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남종합시장에서 짝퉁 신발을 사던 때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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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업 대학 잔혹사

 

출입처라는 명목으로 중앙대학교를 드나든 지 반년 정도 됐다. 12월 중순쯤 처음 중앙대를 찾았을 때 본 것은 총장실이 있는 본관 2층에 파업 중인 청소노동자 십여명이 자리를 펴고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전엔 과거 학교에서 징계 처분을 받았던 한 학생이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려 한 것을 학교 측이 막았다는 타 언론사의 보도를 봤다. 이런 단편들이 겹쳐 내겐 중앙대의 첫 인상이 됐다.

노영수란 사람을 알게 됐다. 워낙 유명하고 시끄러운(?) 일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일을 자주 벌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사실 없었다.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대학 한 두 곳의, 그리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니까. <기업가의 방문>은 노영수가 기업화된 대학 중 중앙대가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03학번인 노영수는 지난 2월에야 학사 학위를 받았으니 졸업이 무지 늦었다. 등록금 때문에 저 멀리 남해에서 고기잡이배를 타야했을 정도로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이 다닌 독어독문학과의 교수였던 진중권이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인생이 한층 더 ‘꼬였다’. 그는 이 사태가 두산 재벌이 중앙대를 사실상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두산 혹은 중앙대는 ‘삐딱한’ 교수를 잘라내는 걸로 끝내지 않았다. 박용성 회장은 “자본주의는 어디서나 통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다. 교수들은 S, A, B, C급으로 평가되고, 수준에 따라 성과급을 받게 됐다. 회계학이 누구나 들어야 하는 교양 필수수업이 됐다. 재단을 비판한 학내 언론은 전량 수거당하는 ‘찌라시’ 신세가 됐다. 외부 경영컨설팅 업체가 껴들어 학과들의 실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냈다.

노영수는 두산이 중앙대의 배후엔 선 뒤 일어난 이런 움직임에 항의하다가 퇴학을 당했다. 다행이 법정이 노영수의 손을 들어줬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어선까지 탔던 그는 가까스로 고졸 신세를 면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은 노영수란 개인의 행적을 사찰하기도 했다. 두산 혹은 중앙대가 학생들을 향해 ‘자본주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맞은편에는 늘 그가 있었다.

졸업한 노영수는 지난달 다시 학교를 찾았다. 자신과 함께 시위를 벌여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 있는 한 4학년 학생의 성적장학금을 학교가 ‘박탈’한 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체 두산 혹은 중앙대가 써내려가는 ‘잔혹사’의 끝은 어디일까. 앞으로도 왠지 노영수를 자주 보게될 것 같다. 그가 이미 오래 전에 ‘방문’한 ‘기업가’에 대한 회고록을 이제 펴내도 전혀 늦은 감이 없다.

 

난 어쩐지 두산베어스엔 정이 안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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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한 해 평균 2000개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생겨난다. 대략 계산하면 하루 5~6개가 나타나는 셈이다. 어떤 사람도 2000개 전부에 노출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그 중 한 두 개쯤에 노출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만큼 많은 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주인공처럼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리는 불운만은 없기를 바라야 할 것 같다. 하지만 2000개 덕에 진보하는 인류의 눈부신 문명은 그런 불운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기왕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정말 반도체 공장 같은 곳에서 이름도 낯선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과 질병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을까. 서울대 의과대학 홍윤철 교수가 쓴 <질병의 탄생>에는 이미 240여년 전에 비슷한 주장이 있었음이 나온다. 1775년 영국의 한 의사는 석탄을 태우고 남는 검댕으로 가득찬 굴뚝을 청소하는 어린 노동자들에게서 음낭암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여기에 '인류가 이전에는 전혀 노출된 적이 없었던 물질이어서 자연선택에 의한 유전자적 적응 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설명을 곁들이면 좀 그럴싸한가.

산업혁명 초기 굴뚝 청소 노동을 했던 아이들에게서 음낭암이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됐다

인류의 역사는 수백만년, 인류의 눈부신 문명화 역사는 농업혁명까지 포함해 후하게 쳐봐야 1만여년,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일으킨 산업혁명의 역사는 불과 200여년이다. 저자는 과거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진화를 거듭한 수백만년에 비해 농업혁명부터 시작된 문명화 이후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겪은 기간은 매우 짧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 몸이 문명화 이후 급격히 달라진 식생활·자연환경·생활습관 등에 적응할 만큼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상태라는 거다. 그래서 어떤 질병은 우리를 위협한다.

농업혁명 이후 ‘고작’ 1만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맞이했다. 수렵채집을 하면서 드물게, 또 오히려 다양하게 섭취하던 식단이 곡류를 중심으로 단순해졌다.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부터는 동물과 공생하던 세균이 사람과 만나게 됐다. 잉여 작물이 생겨나면서 부족끼리 서로 정복하며 이동하기도 했고, 많은 잉여 작물을 가진 집단의 최상층에게는 이미 비만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 집단화·정착화하기 시작한 인류의 삶의 양식은 콜레라·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기에 아주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산업혁명은 질병 탄생에 있어 더 직접적이다. 화학비료와 기계화가 불러온 작물의 대량 생산으로 풍요로워진 식탁은 당뇨환자를 늘게 했다. 영양 섭취는 늘게된 반면 활동량은 줄었다. 생산기술의 자동화와 사무직 노동자의 증가는 비만의 증가를 불러왔다. 전기를 사용해 밤을 밝히게 되면서 우리의 수면 시간은 줄어들었다. 온갖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담배와 술도 마찬가지다. 담배의 역사를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인간의 유전자는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 등 화학물질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조상에게 냉장 기술이 없었던 탓에 발효된 과일에서 오랜 시간 알코올을 섭취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렇게 다량의 알코올을 생산해 마신 것은 그 역사가 짧다.

그럼 이제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유전자에게 질병의 책임을 씌우면 될까. 그건 불합리하다. 유전자를 단 시간에 진화시키는 일은 성서의 창세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이것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암이 그런 경우다. 고혈압의 경우엔 심지어 이를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지목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개개 유전자의 코드나 유전자 작동 방식의 느린 변화가 아니라, 너무 빠른 환경의 변화에서 책임을 찾는 것이 낫다. 환경과 인간의 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계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문명을 만들었고, 문명은 질병을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낸 질병 때문에 죽는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팔자를 저자는 이렇게 풀어볼 것을 권한다: 현대 인류의 환경과 생활습관을 우리의 유전자가 최적으로 적응했던, 수렵채집 시기나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리려 노력하라고. 어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야근한 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삼겹살과 소주, 흰쌀밥과 조미료 맛나는 된장국을 실컷 먹고 담배 한 대로 입가심한 그대에겐 매우 가혹한 일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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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둘러싸고 전쟁이다. 한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동대문 상가 일대에 옛 명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처럼 홍보에 열을 올리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시작부터 잘못된 프로젝트’임을 강조하며 ‘비정상의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라고 난리다. 또 전쟁통에 원치 않은 아이라도 태어난 것처럼 씁쓸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잘 키워보자는 평화주의자들도 보인다. 하지만 전시엔 늘 그렇듯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짬을 내 DDP를 둘러봤다. 구석구석 돌아봤다. 과거 오세훈 시장이 내세웠던 ‘디자인 서울’에 100% 공감하진 않지만, 그래도 디자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건축 전공자의 시각으로 살펴봤다. 솔직히 오 전 시장의 성급함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에 이런 조형의 건축 디자인을 시도했단 것만으로 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물론,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흐르는 듯한 공원과 외관 디자인은 내부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건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전시공간과 상업공간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이미 완결된 건물의 ‘하드웨어’를 뜯어낼 수는 없으니,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대로 이제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DDP를 둘러싼 비판을 좀 더 소환해보자. 동대문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많다. 역사성... 이미 동대문은 운동장을 그리워하는 세대의 장소가 아니라는 지적으로 충분할 것 같다. 문제는 주변과 조화롭지 않다며 지역성을 거론하는 건데, 난 묻고 싶다. 대체 밀리오레, 두산타워, 헬로APM, 굿모닝시티 따위의 건물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라는 건가.

물론 건축 혹은 도시에서 조화나 맥락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형태, 질감, 표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DDP의 디자인은 조화롭다. 꽉 막히고 침침했던 동대문운동장과 그 운동장의 역사성에 다소 과도하게 집착했던 다른 건축가들의 설계안보다는 DDP가 ‘살아있는’ 편이다. 당신이 동대문 어디에서 DDP로 접근하든, 이 건물이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있음을 금방 깨닫게 될 거다.

 

DDP야경@DDP공식홈페이지

누군가는 이런 지적을 했다. “DDP 같은 곡선형 디자인은 원래 공간 이용 효율이 낮다. DDP는 공간을 낭비적으로 쓰고 있다”라고. DDP를 방문한 날 나는 봤다. 굳이 이 곳에서 봄바람을 즐기는 사람들, 기묘한 건축물의 표면을 쓰다듬는 사람들, 뭔가 더 신기한 곳이 있을까하며 둘러보는 사람들. 이들 중 누가 ‘공간적 효율’을 요구한단 말인가. 효율을 강조하는 도시에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지쳤다.

DDP를 찾아간 날, 난 오히려 그 공간적 비효율이 이 곳의 핵심이라고 봤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이 비효율적인 공간을 일부러 찾아왔음을 봤다. 이들은 딱히 목적도 없이 뭔가 이 땅 위에 펼쳐진 새로운 시도를 반기고 또 궁금해서 이 곳에 온 것 같았다. DDP는 그런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딱히 볼 일 없이도 찾게 되는. 그런 인적 인프라를 가진 곳은 서울에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DDP는 지어졌다. 그리고 이 곳을 둘러본 날, 나는 평화주의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은 단순히 DDP가 이미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관찰했던 사람들처럼 이 건축물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 곳에 가면 딱히 볼 것도, 그닥 할 것도 없는 걸 알지만 자꾸만 가고 싶어진다. 나는 이 DDP가 뭔가를 우리에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와서 뭔가를 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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