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Kuma Kengo의 작품을 접하면 그 입면을 구성하는 패턴의 독특함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나처럼 무심한 건축학도라면 “일본 건축가답네"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말겠지만. 그런 '스타일리쉬'한 패턴을 보이는 건축이 오모테산도를 걷다보면 정말이지, 자갈마냥 발에 채인다. 켄고상의 <약한 건축>은 이렇게 그냥 훑어보기 십상인 입면 패턴이 지닌 불순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한다. 켄고상에게는 이 이데올로기의 뿌리가 생각 외로 깊다. 그의 건축도 표면에 그치지 않고 깊이를 갖는다.
이 책은 2004년 출간됐다. 당시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5년'쯤을 맞을 때다. 쿠마가 이 책에서 "건축은 세 가지 숙명-크기, 자원 낭비, 긴 수명-때문에 분명 미움을 받아 당연하다"고 주장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우리도 부동산 경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던 10여년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건축에 대한 거부감이 보다 확산됐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어디까지나 낭만적 첫사랑 이야기일 뿐이다) 켄고상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쿠마는 느닷없이 잘 알려진 경제학자 케인스를 소환한다. 미국의 대공황을 건축·토목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 케인스다. 쿠마는 사실상 "케인스의 정책에는 시간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며 "단기적인 처방을 거듭하는 일이 케인스 정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쿠마는 건축 정책을 활용한 경기 부양을 꿈꾸는 케인스를 비판함으로써 "이 시대 건축에 필요한 것은 접합"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접합'의 필요성은 시간·공간·물질, 어느 것도 예외는 없다. 짓고 부수고 또 짓고, 그렇게 지은 건축은 도도한 랜드마크로 남으며, 이 랜드마크의 물성은 하나 같이 고고한 콘크리트 같은 것. 쿠마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가만 보니, 그의 작품 상당수에서 목재로 조립한 듯한 패턴이 눈에 띈다. 우리가 쉽게 '패턴'이라 부른 것들은 켄고상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접합'의 외부적 표현이다. 이 표현이 켄고상 건축의 표면과 깊이,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쿠마는 명확함을 주장했던 모든 유행을 공격한다. 필로티에 상자를 얹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기단에 상자를 얹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 Rohe가 줄곧 도마에 오른다. 반면 이들에게 사실상 패배한 데스타일De Stijl 건축의 복합성에는 아쉬움을 표한다. 거대 공공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인클로저(Enclosure, 폐쇄성) 현상은 금융 시스템 내의 파생상품만큼이나 도시에 해가 되는 어떤 것이다. 온갖 왜곡을 일삼으며 결과 외엔 어떤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 건축 사진도 경계 대상이다. 켄고상은 앞서 말했듯 시간·공간·물질을 넘나드는 '접합'의 이념으로 중무장했다.
<약한 건축>. 이 책에 '약한 건축'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은 없다. 다만 쿠마가 비판하는 대상들을 '강한 건축'으로 놓고 보면 그 개념을 미뤄 짐작함이 가능하다. 쿠마의 대표작인 '대나무주택'(Great Bamboo Wall) 등 목재로 이뤄진 작은 패턴 단위를 접합하는 식의 작업을 보면, 그는 확실히 '약한 건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켄고상은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리라는 역설을 믿는 듯하다. 그가 추구하는 건 약한 건축이지, 얕은 건축은 아니다. 그의 사상도, 공간도 깊다.
쿠마상이 맞나요, 켄고상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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