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둘러싸고 전쟁이다. 한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동대문 상가 일대에 옛 명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처럼 홍보에 열을 올리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시작부터 잘못된 프로젝트’임을 강조하며 ‘비정상의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라고 난리다. 또 전쟁통에 원치 않은 아이라도 태어난 것처럼 씁쓸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잘 키워보자는 평화주의자들도 보인다. 하지만 전시엔 늘 그렇듯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짬을 내 DDP를 둘러봤다. 구석구석 돌아봤다. 과거 오세훈 시장이 내세웠던 ‘디자인 서울’에 100% 공감하진 않지만, 그래도 디자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건축 전공자의 시각으로 살펴봤다. 솔직히 오 전 시장의 성급함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에 이런 조형의 건축 디자인을 시도했단 것만으로 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물론,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흐르는 듯한 공원과 외관 디자인은 내부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건 디자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전시공간과 상업공간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이미 완결된 건물의 ‘하드웨어’를 뜯어낼 수는 없으니,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대로 이제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DDP를 둘러싼 비판을 좀 더 소환해보자. 동대문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많다. 역사성... 이미 동대문은 운동장을 그리워하는 세대의 장소가 아니라는 지적으로 충분할 것 같다. 문제는 주변과 조화롭지 않다며 지역성을 거론하는 건데, 난 묻고 싶다. 대체 밀리오레, 두산타워, 헬로APM, 굿모닝시티 따위의 건물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라는 건가.
물론 건축 혹은 도시에서 조화나 맥락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형태, 질감, 표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DDP의 디자인은 조화롭다. 꽉 막히고 침침했던 동대문운동장과 그 운동장의 역사성에 다소 과도하게 집착했던 다른 건축가들의 설계안보다는 DDP가 ‘살아있는’ 편이다. 당신이 동대문 어디에서 DDP로 접근하든, 이 건물이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있음을 금방 깨닫게 될 거다.
DDP야경@DDP공식홈페이지
누군가는 이런 지적을 했다. “DDP 같은 곡선형 디자인은 원래 공간 이용 효율이 낮다. DDP는 공간을 낭비적으로 쓰고 있다”라고. DDP를 방문한 날 나는 봤다. 굳이 이 곳에서 봄바람을 즐기는 사람들, 기묘한 건축물의 표면을 쓰다듬는 사람들, 뭔가 더 신기한 곳이 있을까하며 둘러보는 사람들. 이들 중 누가 ‘공간적 효율’을 요구한단 말인가. 효율을 강조하는 도시에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지쳤다.
DDP를 찾아간 날, 난 오히려 그 공간적 비효율이 이 곳의 핵심이라고 봤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이 비효율적인 공간을 일부러 찾아왔음을 봤다. 이들은 딱히 목적도 없이 뭔가 이 땅 위에 펼쳐진 새로운 시도를 반기고 또 궁금해서 이 곳에 온 것 같았다. DDP는 그런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딱히 볼 일 없이도 찾게 되는. 그런 인적 인프라를 가진 곳은 서울에 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DDP는 지어졌다. 그리고 이 곳을 둘러본 날, 나는 평화주의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것은 단순히 DDP가 이미 지어졌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나 역시 내가 관찰했던 사람들처럼 이 건축물에 빠져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그 곳에 가면 딱히 볼 것도, 그닥 할 것도 없는 걸 알지만 자꾸만 가고 싶어진다. 나는 이 DDP가 뭔가를 우리에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와서 뭔가를 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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