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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신 벌을 받는 집

집들은 마치 사람 대신 벌을 받는 것 같다.
– 본문 중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를 언급하며

역사는 공정하지 않다.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언제나 당대의 권력자들 혹은 승리자들에 의해 여러 번 고쳐지고, 심지어는 구체적인 의도 하에 아예 각색되거나 삭제되어온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누군가의 입맛대로 편집된, 그 자체로는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영국의 건축 저널리스트 로버트 베번Rovert Bevan의 <집단기억의 파괴>는 그런 역사 왜곡∙파괴행위가 건축 등 구조물의 훼손∙파괴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적으로 분류되는 국가나 민족, 혹은 인종의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 군사적인 목적과 관계없는 다분히 고의적인 물리적 파괴행위가 자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건축에 가해진 탄압"에 대한 보고서다.

건축이 탄압의 대상이 된다고? 이상하게 들린다. 베번은 건물 자체는 정치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어떻게 건축되고 평가 받고 파괴되느냐에 따라 정치화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벽돌과 돌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변화무쌍해진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두고 특별히 애틋한 감정을 느끼거나 특정한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태우거나 망가뜨린다면, 우리는 슬픔을 느끼거나 때론 분노할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탄압받은' 건축의 예시는 스케일scale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의 망각, 기록의 상실을 통한 역사적 존재(국가, 민족, 인종, 계급 등)의 근거 자체를 부정함에 있다.

돌덩이 따위가 알리 없는 이 목적을 위해 정말 한참을, 그리고 많이도 부수고 부수어 왔다ㅡ프랑스 혁명시기의 공화주의자들은 귀족의 저택과 바스티유 감옥을, 히틀러의 나치스는 유대인의 가옥과 시너고그를,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은 티베트의 수천 개 수도원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알 카에다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WTC)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국지적인 예들까지 이르면 실로 무수하다. 그리고 그만큼 무수히 사라져왔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할 때, 그리고 그 강점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우리도 그런 과정을 주고 받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는 시민혁명군

 

탈레반이 '우상 숭배'를 이유로 파괴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

저자는 '파괴'에 관해 실컷 늘어놓은 후, '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재건이나 복구 행위 역시 역사의 위조에 일조할 수 있으니(마치 파괴의 역사가 없었던 것처럼), 이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건이나 복구가 따른다고 해서 역사가 복원됐다고 말할 순 없기 때문. 정말, 역사는 그 자체로 온전히 사실일 수 없고 온전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믿을만한 역사의 진본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답답하다. 로버트 베번은 그나마 겨우 건축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오랜만에 심시티나 한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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