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에 대한 스포일러가 매우 노골적입니다.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1980년대 후반 미국 사회를 뒤흔든 힙합 그룹 N.W.A의 짧은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제목 속 Compton은 미국 서부 L.A. 인근 빈민가로, N.W.A 다섯 멤버는 모두 이 고장 출신이죠. 말하자면 New York의 Harlem 혹은 Brooklyn 같은 곳입니다. 화려한 도심 언저리 흑인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마을. 밤이면 밤마다 총소리가 들리고, 다음날이면 거리에 핏자국이 흥건한... 어린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마약을 사고 파는... (솔직히 안 가봐서 진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영화는 N.W.A 멤버였던 Ice Cube와 Dr.Dre가 공동 제작했습니다. 이제는 헤드폰 이름으로 더 익숙한 Dr.Dre. 또 Ice Cube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포들을 비난한 곡인 'Black Korea'(1991)로 유명합니다. (이쯤 되면 슬슬 N.W.A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데요...) 'Niggaz Wit Attitude'(까칠한 흑인들...)의 줄임말인 N.W.A는 '정통 힙합'을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끌어올린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Dr. Dre가 N.W.A 출신입니다. (출처: http://www.idownloadblog.com/2014/06/07/journal-profile-of-dr-dre/)

'정통 힙합'이란 말이 쓰기 참 애매한 면이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흑인들의 거리 밑바닥 문화를 담은 힙합'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MC해머 등 춤추기 좋은 클럽용 비트에 랩을 섞은 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그걸 힙합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긴 했죠. 하지만 N.W.A는 본격적으로 랩 가사에 흑인이 대다수인 빈민가에 직접 살며 경험한 마약, 갱, 경찰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N.W.A로 인해 '갱스터 랩'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사실 MC해머 같은 부류는 당시 흑인들 사이에서는 '주류 백인 취향에 충실한 음악'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죠.)

이처럼 정통적인 흑인 정서를 표현한다는 N.W.A의 대표곡이 바로 영화에도 여러차례 나오는 'Fuck Tha Police'입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심검문과 긴급체포를 아무렇지 않게 행하던 미국 경찰들을 '저격'하는 곡이죠. (국제 뉴스를 보면 지금도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도 당시 경찰들의 흑인에 대한 막무가내식 폭력 뉴스를 아주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N.W.A 멤버들은 실제 사건에 영감을 받아 'Fuck Tha Police'를 만들죠. 노래가 궁금한 분은 아래 영상을 클릭.

영화에도 나오듯 N.W.A는 이 곡으로 인해 미국 FBI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영화에 N.W.A의 디트로이트 투어 장면이 나오는데, 경찰은 공연 전 N.W.A에게 'Fuck Tha Police'를 부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반항심 충만한 N.W.A가 말을 들을리가 없죠. 이들은 무대에서 이 곡의 공연을 강행하고, 결국 사복경찰들이 무대에 뛰어들어 총을 쏘면서 공연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N.W.A는 결국 체포되는데, 팬들은 경찰에 대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입니다. (디트로이트 출신 래퍼들 중엔 인터뷰에서 이날 공연을 회상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참고로 Eminem도 디트로이트 출신!) 

N.W.A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정부와 경찰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장면에선 군중들이 N.W.A의 음반을 잔뜩 쌓아놓고 발로 밟아 부수기도 합니다. 피켓을 들고 N.W.A 투어를 쫓아다니며 항의 시위를 하면서 '랩은 음악이 아니다'라고도 합니다. N.W.A가 당대 주류 미국 사회와 공권력에 얼마나 큰 충격과 공포를 줬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들이죠.

N.W.A가 존재한 시간은 고작 5년도 채 안 되지만, 그 사이 그들은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영감을 얻은 젊은이들이 줄줄이 직설적이고 거친 갱스터 랩을 따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이어 Public Enemy, Naughty by Nature(공공의 적... 천성이 까칠한... 그룹 이름이 다 왜 이래?) 같은 힙합 그룹들이 줄줄이 데뷔하고, 이 계보는 Dr.Dre의 한때 동료이자 훗날 갱 집단 간의 총격 사건으로 사망하는 2pac이나 Notorious B.I.G 등 래퍼들로 이어집니다. 지금도 힙합 음악에 남아있는 거친 유전자는 N.W.A가 시초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반항아' N.W.A의 무용담(?)만 그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는 순수하게 음악에만 몰두하고 빈민가의 거친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이 미국 주류 음악시장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약상에서 래퍼로 변신한 Eazy-E란 인물을 중심으로 N.W.A가 결성되고 얼마 안가 수익 배분 문제를 두고 불화를 겪으며 해체되는 과정, Dr.Dre의 솔로로서의 성공, 이어 멤버들의 화해와 에이즈에 걸린 Eazy-E가 결국 사망하는 게 큰 줄거리를 이룹니다.

서로 "Bro"(형제)라고 부를 정도로 절친하던 빈민가 친구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성공에 자신도 모르게 들떠 서로를 소홀히 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서로를 랩으로 공개 비난(디스)하고 물리적인 폭력에까지 이르는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하여간 돈이 정말 문제입니다. (돈이 Money?)

서로 죽일 듯이 싸웠지만, 결국 지금의 성공의 단초가 된 N.W.A란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고 그리워 하게 됩니다. Eazy-E의 죽음 앞에 다시 만나게 된 '브로'들과 그들의 성공한 모습을 영화는 멋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 하는 그런 마음일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미 예전의 반항아가 아닌 철저한 뮤직 비즈니스맨으로 주류 음악시장에 편입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씁쓸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습니다. 머리도, 주머니도 너무 커버린 그들은 아무리 그 시절이 그리워도 돌아가지는 못하는 거죠. N.W.A의 역사는 그렇게 끝납니다.

 

덤으로! 영화 속 인물들, 실제 싱크로율은?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서 화제가 되는 게 또 실존 래퍼와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입니다. 한 번 비교해볼까요.

일단 Dr.Dre입니다. 위는 영화 속 DJing하는 Dr.Dre역의 코리 호킨스, 아래는 영화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 Dr.Dre의 첫 솔로 음반 <The Chronic> 앨범 자켓에 나온 Dr.Dre입니다. 확실히 살찌기 전의 Dr.Dre와는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를 잘 고른 것 같습니다.

다음은 N.W.A의 프런트맨, Eazy-E입니다. 위 사진에서 가운데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 영화에서 Eazy-E를 연기한 제이슨 밋첼입니다. 아래는 현실 Eazy-E. 반항아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네요.

이번엔 한국인을 싫어하는 흑인, Ice Cube입니다. 이 싱크로율은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는데요... 왜냐면 영화에서 Ice Cube를 연기한 오셔 잭슨 주니어가 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Ice Cube 같은 거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근데 전 영화에선 Eazy-E와 Ice Cube가 자꾸 헷갈리더라는... 흑형들은 왜 이렇게 다 비슷하게 생긴 거야.)

이 밖에도 2PAC과 Snoop Dogg(데뷔 초 원랜 Snoop 'Doggy' Dogg이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도 잠깐씩 등장합니다. Dr.Dre의 명곡인 'California Love'와 'Nuthin' But A 'G' Thang'에 각각 피처링했죠. 영화에선 이 노래를 만드는 에피소드가 잠깐씩 나오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이 두 래퍼와 각각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합니다. 영화 속 컷은 구하지 못해 실제 인물들 사진만 보시고 나중에 영화관에서 비교해보시거나 영화를 한번 떠올려보시길.

 

Rest In Peace, Eazy-E & 2p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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