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스크롤을 내리며 뉴스를 읽는데 '데자뷰'마냥 야릇한 느낌을 받은 날이 있었다. 여야가 세월호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두고 어떤 분을 불러야 하느니 마느니 싸우다가 헤어졌다는 뉴스를 볼 때였다. 순간 이게 오늘 나온 뉴스가 맞나 싶은 의문이 머리 속으로 스쳐 들어갔다. 그래서 네이버에 그 분의 이름과 '파행'이란 두 글자를 나란히 넣어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도 여야는 그 분의 증인 소환 문제를 두고 싸우다 결론 없이 헤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가 날짜만 달리하며 반복된다. 내가 뉴스(NEW-S)의 철자를 잘못 아는 건 아닐까.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다. 곳곳에서 "잊지 말자"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분명 누군가는 잊어가고 있거나 벌써 잊었기 때문이다. 종편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모 교수가 "세월호 얘기를 하면 시청률이 안 나온다. 국민들은 이제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 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해경을 해체하고, 유병언을 '죽은 채'로 잡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고, 재보선이 지나니 이제 정말 끝인가 싶다. 누군가 "세월호는 이제 끝났다. 잊어라"라고 말해도 반박하기가 괜히 엄한 분위기다.

시국이 이러니 이 책이 인기가 없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내릴 수 없는 배>. '세월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을 말하다'라며 세월호 참사 100일쯤 이미 나왔지만 언론을 별로 타지도 않았다. 세월호 이전의 '일상'이란 게 그닥 편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모두 소중한 그 '일상'을 찾아가려는 마당에 우석훈은 말한다.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더 위험해질 것이다" 그 놈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데 별안간 우석훈이 훼방을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개된 일련의 상황에 대한 우석훈의 해석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비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이 슬픔과 패닉에 빠져 있는 상황을 악용한 것"이라고 볼만한 일들이 이미 벌어졌거나,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그게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 방향이라는 거다. 이른바 '재난 자본주의'다. 우석훈이 예로 들었듯 제임스 딘이 나온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이란 대재난을 앞두고 곡물 가격 상승을 예측해 콩을 매점매석한 행위 따위를 말한다. 이걸 대한민국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군가 하고 있다는 거다.

일단 청와대. 정부가 총리실 산하로 국가안전처를 따로 신설하겠다고 한 발상을 우석훈은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면피용 시스템"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관리 시스템은 그야말로 '아노미'라고 말한다. 해경은 공중분해될 운명이고 새로 생긴 시스템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만 참사에 대한 법적·행정적 1차 책임을 절대로 지지 않게 됐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럼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배 사고니까, 이제 배는 좀 달라지려나? 우석훈은 절레절레. 일단 대통령도 앞으로 배를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일절 안 했다는 거다. 이제 연안여객 사업이 어려워질 것은 불보듯 뻔한데 정부는 청해진해운 재산을 몰수해 보상금을 채워넣기 위한 '단 하나의 노력'만 할 뿐이다. 배의 수명을 연장해 주고 운항 관리를 느슨하게 해온 점이 세월호 참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데 정부는 말이 없다. 우석훈은 배가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내릴 수 없는 배'이다. 4월 16일 오전 8시52분, "살려주세요"란 단원고 학생의 신고를 목포해경과 전남소방본부가 '뺑뺑이' 돌렸듯,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 훌쩍 넘도록 국민의 안전에 대한 논의를 무한 뺑뺑이 돌리고 있다. 우린 반복되는 세월호 특별법 뉴스처럼 분명 또 데자뷰를 겪을 것이다. 그러고는 "대한민국이 원래 이렇지, 뭐"라며 똑같은 대사를 반복할 터. 내릴 수 없는 배를 탔다. 세월호를 탄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야 그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책은 얇다. 그래도 우석훈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부터 앞으로 진행될 사회적 논의의 주제들까지 정리를 잘한 것 같다.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소설 <모피아> 이후 자꾸 문학적인 욕심을 내는 우석훈의 노력 때문에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출퇴근길에서만이라도 이 책을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들었으면 좋겠다. 가슴이 자꾸 세월호를 잊으라고 하면 일단 머리로라도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정말 '잊히는 것'이 너무나 애달픈 이 영혼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제발 좀 내렸으면 하는 놈들은 절대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