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 정말 무서운 속도로 흥행 기록을 갱신하고 있네요. 개봉 13일 만에 관객 800만명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나왔었지요. 역대 외국 영화 중 최단 기록이라고 합니다. 현재(5월10일) 1000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어벤져스2>는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인들을 설레게 했지요.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월, 제작진이 입국해 마포대교,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 문래동 철강단지, 반포 세빛섬, 강남대로 등에서 촬영을 해갔습니다.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정작 영화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몇십만이 늘 것이라는 둥, 경제 효과가 몇 조에 이른다는 둥 추산들이 나왔지요. 결국 우리나라 대외 이미지가 좋아지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란 얘깁니다.

2014년 3월 <어벤져스2> 촬영으로 통제된 마포대교 모습 (경향신문 서성일 기자님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자, 그런데, 영화가 막상 개봉하니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경제적 효과는 고사하고, 일단 영화에 나온 한국이 “볼품없다”는 겁니다. 당장 “영화를 보고 누가 한국에 매력을 느껴 관광하러 오겠나”란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집니다. 심지어 “이럴 거면 배경이 꼭 한국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았겠는가”란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숫자 놀음부터 한 한국관광공사 및 영화진흥위원회 등 관계자들께서는 반성 좀 하셔야겠습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판 불변의 법칙’. 원판이 못 생겼는데 사진을 예쁘게 찍어달라니요. 슬프지만 <어벤져스2>는 서울의 '원판'을 아주 잘 담아냈다고 봅니다. 이게 무슨 X소리냐구요? <어벤져스2>엔 그네들이 우리 도시 ‘서울’에서 읽어낸 키워드가 나옵니다. 뭘까요? 영화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고가도로: 넌 서울만의 것

<어벤져스2>의 액션씬은 상당부분이 고가도로 위, 아래에서 펼쳐집니다.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캡틴 아메리카’가 고가도로에 붙은 비좁은 철제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하죠. 왜 <어벤져스2> 제작진은 고가도로 액션씬을 택했을까요? 고가도로는 서울이나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서울의 고가도로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게 맞습니다. 적어도 분명 외국에서 온 그네들의 눈에는 인상적이었을 겁니다.

대표적인 게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등으로 부르는 한강변 자동차 전용도로입니다. 과거 개발 시대, 서울은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저기를 파헤치며 공사를 벌이는, 아주 변화무쌍한 곳이었죠.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곳곳이 공사 중이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가장 간편한 답은 바로, 한강을 따라 쭉~ 그어버린 겁니다. 덕분에 우리가 한강을 가장 잘 볼 수 있을 땐 저 도로 위를 달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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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분명 희한한 풍경입니다. 천연 레저 공간인 한강에 가려면 우리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거나, 육교로 그 위를 혹은 지하도로 그 아래를 지나야만 하죠. 대체 왜 이 아름다운 강을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들만 즐기라는 걸까요? 그러다보니 사람이 즐기는 한강의 모습은 때때로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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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운동하기 좋게 고가도로로 그늘을 만들어준 걸까요. 서울시에서 자꾸 강변북로 지하화 계획 등을 내놓는 것은 이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함이죠. 압축·고속 개발 시대를 지난 서울 특유의 인상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벤져스2>엔 이런 고가도 담겼습니다. 도로 위에 나란히 세워진 경우죠. 특히 지하철 2호선 잠실역~왕십리역 구간에선 지하철이 고가를 타고 우리 머리 위로 다닙니다. 말이 지하철이지, 사실 ‘지상철’ 혹은 ‘고공철’입니다. 1970년대, 영화 <강남1970>에서 보듯 서울로 자꾸 인구가 몰려드니 지하철을 놓긴 놓아야겠는데, 지하로 파묻을 돈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편하고 싸게 먹히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이미 놓여진 도로 위로 고가를 지어 전철을 달리게 하는 것. 한강변 자동차 전용도로와 같은 맥락입니다.

상암동: 넌 정체 없는 서울의 정체

상암도 <어벤져스2>가 선택한 서울 로케이션입니다. 한 방송국 앞에 있는 조형물을 배경으로 비행선이 휙휙 날아다니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신도시답게 넓은 도로를 우리의 스칼렛 요한슨이 질주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대중문화부에서 일하는 요즘, MBC나 CJ E&M 같은 방송국들이 상암에 많이 포진해있어 이곳에 자주 가게 됩니다. 그런데, ‘디지털미디어시티’란 이름이 붙은 이 곳 상암동을 거닐 때마다 묘하게 자꾸 경기도 판교에 있는 ‘테크노밸리’가 떠오릅니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네이버 거리뷰

판교 테크노밸리, 네이버 거리뷰

닮지 않았나요? 외관상으로도 알게 모르게 뭔가 유사한 냄새를 풍기지만, 사실 개발 방식도 매우 비슷합니다. 지구단위계획 단계부터 특정 용도(상암은 미디어, 판교는 IT)를 염두에 두고, 해당 업계 회사들이 들어오도록 홍보하거나 어드밴티지를 주는 식이죠.

개별 건축물 디자인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줍니다. 두 단지 모두 ‘첨단 이미지를 표현할 것’ 같은 식의 조건이 빠지지 않았죠. ‘첨단 이미지’가 대체 뭐냐구요? 사실 애매합니다. 단, 단지 계획을 주관하는 측에선 ‘외관에서 유리를 00% 이상 사용할 것’ 같은 조건이 따라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의 눈엔 그게 첨단 이미지인 모양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계획 아래 지어진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줄여서 ‘디미시’ㅋ). 뭔가 완전히 달라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비슷해 보이는 건물들이 줄을 잇습니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네이버 항공뷰(2009년3월 촬영)

전 개인적으로 상암이나 판교를 보면 ‘파랗다’는 이미지가 딱 떠오릅니다. 혹시 개구쟁이 스머프가 사는 동네일까요. 저마다 개성을 부르짖지만 한 꺼풀 더 까보면 실은 스머프들처럼 똑같습니다. 말이 좋아 계획이지, 이런 식으로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상 ‘규제’ 아닐까요. 상암 외에도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등 서울엔 이런 식의 계획으로 만든 단지가 여럿 있습니다. <어벤져스2> 제작진에게도 그런 점이 독특해 보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세빛둥둥섬: 넌 답이 없다

<어벤져스2>가 한국을 촬영지로 삼은 것은 물론 한국 여배우 수현을 출연시킨 것에도 역시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영화에서 수현은 유전자 공학 전문가인 ‘닥터 헬렌 조’를 연기했습니다. 그녀가 일하는 연구소는 바로, 한강 세빛둥둥섬(정식 명칭은 ‘세빛섬’)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어벤져스2> 제작진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빛둥둥섬이 첨단 연구소라니!” 우리가 저 쓰잘 데 없는 세빛둥둥섬을 지어놓고, ‘이걸 대체 뭣에 써야하나’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벤져스2> 제작진이 대안을 제시한 겁니다. 우리가 고작 예식장이니, 레스토랑이니 하는 정도의 생각에 머무를 때, 그네들은 연구소를 떠올렸습니다. 이게 바로 선진국 발상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법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야 세빛둥둥섬을 나이트클럽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어벤져스2>에 감사해야 합니다. (박원순 시장님, 들리시나요)

YTN 뉴스 화면 캡쳐

자, 여기까지가 제 나름의 추측으로 정리해본 <어벤져스2>가 그린 서울 로케이션의 배경입니다. 솔직히 영화에 나온 서울,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사실 우리의 아이언맨이 광화문 서까래를 부수고 들어가 기왓장을 모조리 뒤엎어버리는 액션을 연출해도 괜찮았을텐데요. 그들은 왜 그런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을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서 이 글은 출발했습니다. <어벤져스2>에 담긴 서울,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진짜 문제는 <어벤져스2> 핵노잼